성 경 : 누가복음 19 : 45 ~ 48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쫒으시며

 4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窟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설 교 : 예동열 목사


 성경 출애굽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고난을 겪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기적으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기적의 하나님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목적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에게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출애굽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출애굽기 후반부에는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양쪽에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진설병대와 하나님의 인도를 상징하는

등잔대가 양쪽으로 놓여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을 성전이다, 성소다 그렇게 말하지만 건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면 그 곳은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성전이 기도하는 공간이 되어야 진정한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46절)

     오늘 본문 46절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뭡니까? 물론 기도는 내 마음 속에 있는 소원과 바램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기도에서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던 것처럼 기도의 마지막은 주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 그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낮추고 잠잠하게 주님의 음성에 집중해야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눔 1> 귀하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일방적인 기도입니까? 묻고 듣고 순종하는 기도입니까?


 2.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장사하는 마음입니다(45절)

     장사라는 뜻은 무엇인가를 팔아서 자신의 이득으로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가 교회에 와서 내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거기에 집중돼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절대로 교회 안에서 물질 거래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게 될 때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눔 2> 교회에 와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3.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47, 48절)

    여기에 "귀를 기울여 듣다" 는 말의 뜻은 "어디 어디에 매달린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 말씀의 밧줄에 매달려 있는 데 이 줄을 놓쳐버리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칙입니다.


<나눔 3> 귀하는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심정을 말씀을 듣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리는 심정으로 듣고 계십니까?


이 자료는 울산소재 우정교회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열왕기하 5 : 1 ~ 8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이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 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 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 하더이다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한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설 교 : 예동열목사님


   우리나라 국가대표 야구감독을 여러 번 지낸 김인식 감독이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는 할 줄 아는게 야구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가 이제 야구를 한참 하고 있는 후배 야구인들에게 이런 조언을 합니다.

"요즘 선수들 중에 많은 선수들이 야구가 뭔지 모르고 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야구가 뭔지 모르고 야구를 하면 아무리

훈련 양이 많아도 탁월한 선수는 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신앙생활이 뭔지 믿음의 본질이 뭔지

그것도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나아만'이라는 이름은 '기쁨', '즐거움', '유쾌함'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작 나병이라는 병에 걸려 슬픔과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삶 속에 치유의 기적이 나타나 새로운 삶의 기쁨을 얻게 된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가 잘 아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신앙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1.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과 간섭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나아만의 치유와 회복은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잡아 온 한 소녀의 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린 소녀가 자기 주인의 병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의 마음 속에 주인의 병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 이야기를 자기 안 주인에게 하자 그 이야기를 자기 남편 나아만에게 여과없이 전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아만은 왕에게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은 많은 보물과 함께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까지 보내는

그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과정 가운데서 하나라도 빠졌다면 나아만의 치료는 불가능했을 것 입니다.

<나눔 1>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계획하셨던 사건들이 있습니까?


2.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는 것 입니다.(3절)

   민수기 14장 24절에 보면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랬습니다.

여기에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는 'different spirit'  즉 다른 영을 가졌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어린 소녀도 나아만을 보는 순간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를 먼저 떠 올린 것은, 떠 올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 달리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가면 나을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이 그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나눔 2> 어떤 일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3. 신앙생활은 경험이고 체험입니다.(3절)

   오늘 본문의 그 어린 소녀가 그렇게 확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사마리아에서 살고 있는 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든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눈으로 목격했든지 아니면 그 소녀가 직접 경험했든지 중에 하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해서 주인이 낫지 않으면 그 소녀의 목숨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눔 3> 최근 하나님을 경험한 일이 있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이 자료는 2016년 5월 15일 울산 소재 우정교회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경 : 사무엘상 30 : 7 ~15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 가져가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화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9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 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11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12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1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14 무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15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 하겠다고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설교 : 예동열목사님


  뉴욕 타임즈에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라고 하는 사람이 <인간의 품격>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이 예일대에서 도덕철학이라는 과목으로 강의를 하면서 성공적인 삶을 위해 헌신해야 될 4가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소명의식에 헌신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돈이 아니라 내가 그 직업을 위해서 부름받았다고 하는 소명의식이 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족에 대한 책임과 헌신입니다.

셋째, 공동체 의식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철학 혹은 신앙의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신앙에 헌신한다는 것은 어떤 다급한 순간을 만나도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에봇을 덮어쓰고

하나님을 붙잡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시간에 이어서 에봇을 붙잡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은 상대방의 연약함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9, 10절)

    아말렉 군사들이 시글락으로 쳐들어 와서 모든 가족들과 모든 소유물을 빼앗아 간 다음 다윗과 그의 용사 600명이 군사를 이끌고 쫓아갑니다.

그러나 브솔 시내에 이르러 200명이 못 간다고 했을 때 다윗은 그들을 거기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 예수님은 우리이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나눔 1>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연약한 자를 품어주고 받아 준 경험이 있으십니까?


2. 연약한 사람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표일 때 가능합니다(11, 12절)

    다윗 일행이 아말렉 군사들을 추격하는 중에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병 들어 죽게 된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 사람에게 먼저 먹을 것을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윗의 관심은 사람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다윗은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나눔 2> 귀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살린 적이 있습니까? - 직장에서, 모임에서, 인간관계 가운데서...


3.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15절)

    다윗이 애굽 사람을 살릴 때는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살려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통해서 아말렉 군사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지 정확하게 그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일 하실 때 가장 적절한 사람을 붙여 주심으로 역사하시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나눔 3> 귀하는 어떤 문제를 해결 할 때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을 통해서 해결한 적이 있으십니까?


이 자료는 2016년 5월 1일 울산 소재 우정교회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 요약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을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누가복음 16 ; 10 ~ 13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말 씀 : 예동열목사님


    성경에는 32,500가지 정도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는 인물이 함께 등장하게 됩니다.

그 중 기억될만한 인물이 1,500명, 다시 그 중에서 간증의 주인공, 기도의 주인공,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45명이라고 합니다.


그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인 다윗은 위대한 인물이 되기에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1. 다윗은 무관심의 장벽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시편 27편 10절을 보면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2. 다윗는 죽을 고비를 15번이나 겪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처하면서 살다보니 그 마음에 상처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장벽도 뛰어넘고, 경쟁의 장벽도 뛰어 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리고 사무엘상 16장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기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1.  다윗의 어떤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로 여김 받게 된 것일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당시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주권적인 섭리이겠습니다만     

       느헤미야 9장 7절에서 8절에 의하면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라고 했다.

       '충성됨을 보시고' 믿음의 조상을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충성된 사람에게 집착하시는가?

        신약에 나오는 인물 중 충성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됨됨이 즉 충성됨은 어떻게 하나님을 향해 나타나는지 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의하면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충성은 헬라어로 피스토스라고 합니다. 그 보편적인 의미는 '믿을만한' 이라는 뜻인데, 저 뒤에 나오는 의미 중 하나가 '倍加者'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배가 시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는 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 '여겨' 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헤게오마이' 인데, 이 뜻은 대차대조표의 잔액부분, 즉 수입에서 지출을 빼고 남은 수익부분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남겨 주십니까? 능력주시고, 충성되이 여겨주시고, 직분을 맡겨주십니다.

  

2. 그렇다면 어떤 것에 충성을 해야 할까요? (충성스러움의 영역)

      충성은 하나님과의 의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겨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재물에 충성하면 참된 것을 맡기십니다.

      남의 것에 충성하면 너희 것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실상이란 말은 헬라어로 히포스타시스인데, 그 의미는 "밑에서 받쳐 주는 것" 이란 뜻 입니다.

      하나님은 흔들어 보시고 큰 것을 얹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순종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 살기에 너무 바빠서 ...!!!

      하나님은 오늘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십니다.

     

성 경 : 사무엘상 30 : 1 ~ 10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길을 갔더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아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 잡혔더라)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이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 다윗이 하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9.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 백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 백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설 교 : 예동열 목사님


  우리나라에 최고의 글씨체를 만든 추사 김정희가 그 글씨체를 만들어 내고 중국 사람들조차 놀랄만한 글씨체가 나오게 되기까지는 제주도에서 9년

이라는 유배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자리 잡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과 열 번이 넘는 죽을 고비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블레셋 지역에 큰 도시국가였던 가드라는 곳에 피신해 있습니다. 그 때 하필 블레셋과 사울왕의 전투가 벌어지고

처음에는 다윗이 그 전쟁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주위의 반대로 다시 주거지인 시글락으로 돌아오는데 그 때 남방에 있던 아말렉 족속들이

쳐 들어와서 성읍을 불 태우고 자기 가족들을 다 포로로 끌고 가 버린 그런 상황을 만난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이 그 다급한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견뎌 냈는가?


1. 다윗은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6절)

   본문 6절에 나오는 "다급하다" 라는 말의 뜻은 "여러갈래로 묶여저 있어서 조금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다윗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때문에 힘을 얻은 것입니다. 또 여기에 '용기'라는 단어의 뜻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신앙인이라는 것은 여러 갈래로 묶여져 있어서 조금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다급한 순간에도 하나님 때문에 힘을 얻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굳세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나눔 1> 인생을 살면서 가장 다급한 때는 언제였습니까?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2. 하나님 때문에 용기를 얻는 인생이 되려면 늘 하나님께 물어야 됩니다(7 ~ 8절)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께 묻는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에봇을 받아들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는 옷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반드시 입었던 옷입니다. 제사장들은 그 에봇을 입는 순간 "판결은 하나님께 있어,

결정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신앙은 그런겁니다. 신앙은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결정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 먼저 여쭤 보는 것입니다.

<나눔 2 >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먼저 결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정하십니까?


3. 늘 하나님께 여쭤보는 에봇의 사람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9 ~ 10절)

   다윗이 하나님께 응답받고 아말렉을 쫓아가는 중에 브솔 시내를 만납니다.

그 때는 마침 늦은 비로 인해 강이 범람한 때라 그 모습을 지켜 본 사람 중에 200명이 강을 건너지 못하겠다고 버팁니다.

그 때 다윗은 그 사람들을 거기에 두고 400명 만으로 강을 건넙니다. 한 사람이 아쉬운 그 때에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결국 신앙은 사람의 숫자에 연연하거나 구애 받지 않는 것입니다.

<나눔 3> 당신은 숫자나 양처럼 바깥으로 보이는 것에 민감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자료는 는 2016년 4월 27일 울산 소재 우정교회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 요약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경 : 마가복음 6 : 34 ~ 44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ㅣ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몰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 이었더라


설교 : 예동열목사님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고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 본문입니다.

이 말은 곧 이 사건이 너무나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을 보면 두 가지 잔치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헤롯이 자기 생일에 배설한 잔치입니다. 또 하나는 광야에거 예수님이 배설한

잔치입니다. 헤롯이 배설한 잔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잔치였습니다. 음악도, 춤추는 무희도, 노래도 조명도 모든 것을 다 갖춘 잔치였는데,

결과는 세례요한을 죽이는 피의 잔치, 끝이 좋지 않은 잔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베푸신 잔치는 광야에서 일어났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러나 그 잔치는 기쁨의 잔치였고, 모든 사람이 다 배불리 먹는 풍성한 잔치였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1. 그 차이는 그 잔치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의 차이입니다.

    마가복음 6장 21절에 등장하는 헤롯의 잔치에는 그 잔치를 빛내 줄 많은 귀인들이 다 초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그 잔치는 피로 얼룩진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피의 잔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잔치를 비교해 보면서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항상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늘 초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늘 필요하다고 말씀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역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풍성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나눔 1>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삶과 예수님이 없는 삶의 차이를 경험해 보신 분이 계시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2. 하나님의 법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38절)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네가 무엇이 있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지난 주에 살펴 봤던 선지생도의 아내에게도 "네게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38절에도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개가 있는지 가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나는 시간이 없어요. 물질이 없어요. 건강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달란트 비유에서도 보듯이 5달란트가 우리가 보기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라 할 지라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비록 작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드릴 때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축복하셨고,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나누어 줄 때 42절에

"다 배불리 먹고" 풍성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나눔 2> 당신에게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드렸을 때 주님이 풍성한 은혜로 갚으셨던 간증이 있으셨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3. 성경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장 7절 ~ 10절)

    창세기 26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등장하는데 마치 평행이론처럼 아버지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이삭을 보게됩니다.

이삭이 100배의 축복을 받을 때도 하나님은 "네 아버지 아브라함 때문에 그런 복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나눔 3>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이 몸된 교회를 위해서 어떤 것을 심기를 원하십니까?


이 설교는 2016년 4월 17일 울산소재 우정교회 예동열목사님이 하신 설교의 요약입니다.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에서 설교 전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경 : 열왕기하 4:1 ~ 7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설교 : 예동열목사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건을 비롯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기적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라는 말로

요약 될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그러면 내 오빠가 죽지 않았을거에요."

나사로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사로를 살려 내시는 것을 보게됩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야이로의 부탁을 듣고 집으로 가는 순간 딸이 이미 죽었다고

이제는 주님이 오실 필요가 없다고 전갈이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언제나 인간의 마지막은 주님이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선지 생도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도 없고 돈도 없고 이제 자기 아들이 빚대신 종으로

끌려가야 되는 마지막 순간만 앞두고 있는 이 때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1. 기름을 빌리지 말고 그릇을 빌리라(4절 상반절, 5절)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왜 하나님이 당장 필요한 기름을 빌리지 말고 그릇을 빌리라고 말씀하셨을까? 물음을 던지면서

그 이유의 첫 번째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급해도 당장 눈 앞에 있는 물질보다, 이익보다, 필요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

그릇을 먼저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정리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이 기름이 아니라 그릇을 빌리라고 한 이유, 두 번째는 기름을 빌린다는 것은

결국 또 사람을 의지하는 것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여인에게 하나님이 가르쳐주고 싶었던 핵심은 신앙은 사람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이제 남편의 신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서 기름이 아니라 그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눔 1> 당신은 사면초가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응답받고 해결 받았던 때가 있습니까?

2. 엘리사 선지자는 이 여인에게 문을 닫으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이제 그릇을 준비해 온 여인에게 문을 닫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또 한번 세심한 배려를 하십니다.

"네 두 아들과 함께" 이 말이 4절, 5절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걸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내 남편을, 우리 아버지를 왜 그렇게 일찍

데리고 가셨는지 이해되지는 않지만 이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아 있는 가족들이 함께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에 이 여인 뿐만

아니라 두 아들도 함께 문을 닫고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문을 닫으라는 말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닫고 하나님 그 분만 바라보라는 메시지입니다.

<나눔 2> 당신은 인생이 사면초가를 만났을 때 혼자 그 문제를 극복하십니까? 가족들과 같이 극복하십니까?

              "네 두 아들과 함께" 라는 말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 설교 중 이 말씀은 하나님 외에 모든 가능성을 닫으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부연했습니다.


3. 준비된 그릇이 없으면 기름은 곧 그칩니다(6절)

   문을 닫고 기름을 붓기 시작합니다. 그릇마다 가득차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인이 아들에게 또 다른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이 있는 한 계속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준비된 그릇이 없으면 그 순간 기름 부음은 끝납니다.

<나눔 3> 당신은 준비 된 그릇이 얼마나 있습니까?

이 설교는 2016년 4월 10일 울산소재 우정교회 예동열목사님이 하신 설교의 요약입니다.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에서 설교 전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열왕기하 4 :1 ~ 7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이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설 교 : 예동열 목사님


 사면초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명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이죠.

비슷한 말이 많습니다. 진퇴양난, 진퇴유곡, 고립무원 등등의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이

바로 그런 상황을 만났습니다. 자기의 남편이 엘리사 선지자를 따라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삶을 바쳐 주의 길을 걸어

가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부터 빚을 지기 시작해서 이제 자기 아들을 빚쟁이의

종으로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 밖에 없는 상활, 욥의 표현대로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갈 수 없는 사방 팔방이 막혀있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들려준 이야기, 여기에 귀를 기울여야 신앙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2절)

   이제 죽음과 같은 고난 가운데 있는 여인에게 엘리사가 들려준 첫 번째 이야기는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원어의 의미에 따라 번역하면 "너를 위하여 내가 무언가를 할거야" 이런 뜻으로 번역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면초가, 진퇴양난, 진퇴유곡, 고립무원의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나눔 : 귀하가 인생을 살면서 사면초가에 처했을 때가 있었습니까?

         그 때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2.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3절)

   많은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의 터널을 통과할 때 그 상황에 파묻혀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그 상황만 바라보다가 더 절망하고 심지어 생명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그 때 일단 밖으로 나와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 환경을 빨리 바꾸지 않으면 점점 그 죄 가운데로 빠져들고 맙니다. 죄 가운데 절망 가운데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나님이 도우실 길이 있음을 알게 될 것 입니다.

나눔 : 귀하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환경이나 유혹에서 빠져 나온 경험이 있다면 나눠 주십시오.


3. 그릇을 빌리라(3절)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그름을 빌리라고 하지 않고 그릇을 빌리라고 말씀합니다.

기름은 당시 돈과 같은 역할을 했기에 원칙대로 하자면 그릇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기름을 빌리라고 해야 맞습니다.

즉 이 말씀을 묵상해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당장 필요한 물질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눔 : 귀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어떤 그릇이 되고 싶으십니까?


이 자료는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 요약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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