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민수기 6:22 ~ 27

설 교 : 예동열 목사


   오늘 본문을 가리켜 제사장의 축복 혹은 아론의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앞으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이끌어 나갈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축복할 때 이런 내용으로 축복하라고 전달하신 내용입니다.

실지로 구약의 성도들이 예배 드릴 때 가장 중요한 순서가 바로 축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매일 아침 제사가 끝날 때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 돌 계단에 서서 성전을 빠져 나가는 성도들에게 두 손을 들고

이 기도문으로 축복햇습니다. 오늘 본문 24절, 25절, 26절에는 공통적으로 "여호와는" 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되풀이 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원하노라"로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소원이 들어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2017년도를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하시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1.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 비유하고 우리가 사는 인생을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광야에 비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에 그 후에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도 수 많은 위기를

경험합니다. 전쟁의 위험, 질병의 위험, 가난의 위험, 관계의 위기, 지도력의 위기, 자신감의 위기, 절망의 위기 등등...,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이미 다 아신다고 말씀합니다.

아신다는 것은 책임지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눔 1> 귀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나누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도와 주실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25절)

   "여화와는 그이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구약에서 은혜하는 단어는 모든 아름다운 것, 모든 가치 있는 것, 모든 선한 것을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자비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의 얼굴입니다. 그 은혜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면 우리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던 것과 같습니다.

<나눔 2> 귀하는 얼굴을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혹시 귀하는 환한 얼굴을 주위 사람들에게 비추어 주셨습니까? 힘들고 짜증스러운 얼굴을

             비추어 주셨습니까?


3.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하십니다(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은 히브리 말로 샬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샬롬은 단순히 마음이 편안하다. 그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 삶의 모든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건강,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에너지로 충만한 상태 그런 상태를 샬롬이라고 합니다.

또 여기에 얼굴을 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시편 105편 4절 참조)

<나눔 3> 귀하는 2017년도 하나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가정과 개인에 대해서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나누어 주십시오.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을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예레미야 17:12 ~ 14

설 교 : 예동열 목사


   지난 시간에 우리는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를 통해서 고치고 싶은 마음 낫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지

않으시면 어떤 구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레미야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침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1. 절대 하나님을 버리거나 떠나면 안됩니다(13절)

   오늘 본문 13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버린다" "떠난다" 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그냥 볼 때는 "버린다" "떠난다"라는 단어가 다른 것 같지만 엄밀하게 생각해 보면 "버리고 떠나는" 겁니다.

따라서 버린다는 말과 떠난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버리고서는 절대로

고침을 받을 수 없다.

너무나 잘 아는 말이지만 예레미야는 다시 한 번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 그랬습니다.

이 세대를 본 받는다는 말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딴 길로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어떤 치유도 회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그 길에서 돌이켜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눔 1> 귀하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가다가 곤혹을 치르거나 손해를 본 일이 있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2. 우리가 그 분을 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은 그 분은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13절)

   오늘 본문 13절에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화와여" 그랬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꿈이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그 꿈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세상적인 꿈은

아닐 것입니다. 소위 꿈이라는, 비전이라는 이름하에 세상적인 욕심을 향해 달려가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무와 허망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을 소망삼지 않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고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눔 2> 귀하는 과거에는 어떤 소망을 가지셨고, 지금은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3. 여호와를 소망삼는 사람은 주님이 나의 찬송이라고 고백해야 됩니다(14절)

   사람들의 입술에서 노래 되어진다는 것은 지금 그 사람의 삶과 소원을 그 노래의 가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노래의 거의 대부분은 사랑과 관련된 가사입니다.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우리 노래여야 되고 주님이 내 자랑, 나의 기쁨,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치유받고 그런 사람이 고침을 받습니다.

<나눔 3> 귀하의 인생 가운데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라을 마음껏 자랑해 보십시오.


※ 이 내용은 울산소재 우정교회를 담당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을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역대하 20:20 ~ 23

설 교 : 예동열 목사


   오늘 말씀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아람 족속들, 모압과 암몬과 세일 산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전투에 나갈 때 백성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대목이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화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 말은 전투현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전투를 앞두고 있다면 좀 더 결연한 메시지를 던져야

할 것 같은데 그것과는 거리가 먼 메시집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여호사밧이 전투를 하면서 전투복을 입은 최정예 부대를

앞세우지 않고 거룩한 예복을 입은 찬양대를 앞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찬송하며 선포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승리를 부르는 비결은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호사밧 군대는 이긴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것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인생은 미리 감사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응답을 확실히 받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미리 드리는 감사는 그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을 강력하게 끌어오는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나눔 1> 귀하는 다가 올 2017년 생각하면서 미리 감사할 것은 무엇입니까?


2. 감사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복병을 준비하십니다(22절).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특별히 감사할 것이 없어도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하나님의 승리를 불러오는 암호입니다.

<나눔 2>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함으로 받았던 축복이 있다면 나누어 주십시오.


3. 감사는 하나님을 신회한다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20절).

   오늘 본문 2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를 시작하고, 찬송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게 하심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도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면 견고히 서고 형통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결국 견고히 서고 형통하다는 것은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감사가 무엇입니까?

일이 어렵고 지금은 보이는 것도 없지만 그때라도 하나님이 잘 되게 해 주실 줄로 믿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회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승리의 복병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나눔 3> 지금 귀하의 한경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시간 그 부분에 대해서 솔직히 나누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입술로 고백해 보십시오.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골로새서 2 : 6 ~ 7

설 교 : 예동열 목사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게 됩니다. 나흘 만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돌을 옮겨 놓으라" 고 말씀하신 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하시면서 떡을 떼시면서 잔을

나누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 말씀에 의하면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이며 동시에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골로새 교회를 통하여 오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감사는 무엇입니까?


1. 감사는 넘치게 해야 됩니다(7절)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7절을 자세히 보면 우리의 인생을 나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무 하나가 산 위에 우뚝 서기 위해서는 세 단계를 거쳐야되는데,

첫 번 째는 아주 어릴 적에 뿌리를 내려야합니다.

두 번 째는 싹을 틔우고 촉을 내야됩니다.

세 번 째는 비 바람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서..."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자기 스스로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키워주시고 하나님이 돌 봐 주셨기 때문에 그 믿음의 나무에서 궁극적으로 열려야 될

열매는 감사라는 열매입니다.

<나눔 1> 귀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뿌리를 내린 적이 언젠지? 신앙이 자라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어떤 계기로 신앙이 굳건히 섰는지

             나누어 주십시오.


2.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 속에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 마음이 없는 찬양, 마음이 없는 헌신과 봉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의 '감사'와 '찬양'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 하반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랬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적인 배경으로 해석하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시편 138편 1절에서 시편 기자도 "내가 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한 마음' 자체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눔 2> 귀하는 2016년 한 해를 지내면서 정말 마음으로 감사하는 감사 제목 하나 씩 나누어 주십시오.


3.감사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 입니다.

   성경은 자주 우리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되는 이유는 지금이 노아의 때처럼 죄악이 관영하고 주님 오실 때가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골로새서 4장 2절에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고 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깨어 있으십시오. 기도 안에서 감사 안에서" 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고,

감사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나눔 3> 서로에 대해서 감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십시오.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을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요한복음 1 : 1 ~ 12

설 교 : 예동열 목사


   어느 추운 겨울 아침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정비사 한 분이 차를 몰고 출근하다가 갑자기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차 뚜껑을 열고 원인을 찾는데 어디서 고장이 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고급차가 한 대 와서 서더니 노신사 한 분이

내리더니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더랍니다.

그 때 그 정비사가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못 고치는 걸 누가 고쳐?"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 신가가  "시동 한 번 걸어보라" 하기에

시동을 걸어보았더니 정말 시동이 걸렸습니다.

정비사가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뭘 하시는 분입니까?" 그 노신사는 대답 대신 명함을 하나 주고 갔는데, 그 명함에는 "헨리포드"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인류를 만드시고 만물을 만드신 그 분이 우리를 고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분이 오심으로 역사의 BC와 AD가 나누어집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런 변화를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분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두 가지 반응입니다. 하나는 거절이고, 하나는 영접입니다.


1. 거절의 반응(11절)

   오늘 본문 11절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랬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에 그 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그 분은 누구십니까?

오늘 본문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는 창조자로써 이제는

때가 되매 이 땅을 고치고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창조자 일뿐만 아니라 그 분은 빛이십니다. 빛이 비칠 때 빛을 무서워하면서 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빛 앞에서 어둠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 살고 어둠 속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나눔 1> 귀하는 엘리자베스 여왕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나눔 2> 사람들은 창조주요 빛이신 예수님을 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2. 영접하는 반응(12절)

   우리 말 성경에는 없습니다만 성경 원문에 보면 영어성경에도 12절 앞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소수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소수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다수가 항상 진리는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에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요, 빛이신 그 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내가 그 분을 영접하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은 이미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나눔 3> 귀하는 예수님을 마음 속 가장 소중한 곳에 영접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모신 다음에 귀하는 어떻게 변화되셨습니까? 전과 후를 말씀해 주십시오.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을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다니엘 1:1 ~ 9

설 교 : 예동열 목사


   영성학자이자 기독교 작가인 리챠드포스터라는 분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평가하고 분석하면서 <이 시대는 피상적이다> 그랬습니다.

피상적이라는 말은 겉모습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 내지는 속은 드려다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강조하는 시대 이것을

일컬어 피상적이다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고하기를 한 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피상적인데 몰두하면서 살게 되면 그것을 다 얻을 수 없어서 늘 성서를 받으면서

살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다니엘은 피상적인 신앙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는 신앙이었고, 겉모습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의 영적비밀을 경험하는 간증이 주인공, 기적의 주인공,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1. 다니엘은 이름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7절)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이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신다" "하나님께서 심판자가 되신다" 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이름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면서 벨드사살이라고 바뀌었는데, 그 이름의 뜻은 '벨(바벨론에서 섬기는 신의 이름) 이라고 하는 신이

총애하는 지도자' 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름이 바뀌는 어마어마한 일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름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고, 다니엘이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다리오 왕은 사자굴에 가서 "사시는(living)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눔1>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좌우명 내지는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 다니엘은 인생은 뜻을 정하고 사는 인생이었습니다.(8절)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그랬습니다.

이 '뜻'이라는 말이 '마음'이라는 말인데 이 '마음'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인들은 '우리 삶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그 무엇', '그것이 우리 삶 전체를

이끌어 가는 힘' 이것이 마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정하는 것 그것은 누가 하는 일입니까?

이것은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눔2>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뜻을 정하셨습니까? 그것이 인생을 사는데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3. 다니엘의 뜻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자기를 더럽히기 않겠다는 것입니다(8절).

   오늘 본문 8절에 나오는 '더럽히다'라는 단어의 뜻은 '모욕하다, 모독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모욕하지 않겠다' 고 뜻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단어 '정한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중요한 뜻 중에 하나가 '변화를 일으켰다' 는 말입니다.

뜻을 정한 ㅇ니생 그 인생에게는 반드시 좋은 쪽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눔3>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것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셨습니까?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다니엘 1 : 1 ~ 9

설 교 : 예동열 목사


    우리는 종종 진부하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하고 쓰기도 합니다.

'진부하다'의 뜻은 케케묵어서 낡고 오래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진부(陳腐)라는 단어가 한자로 펼쳐놓을 진, 썩을 부자를 씁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쇠고기를 펼쳐놓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쇠고기가 너무 귀한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펼쳐놓은 고기를 보고 부러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고기가 썩어서 악취가 나는데도 심지어 자기 옷에 그 냄새가 배어서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펼쳐놓은 것. 이것이 '진부하다'의 원래 배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참신한 신앙이 되어야 되는데, 우리의 신앙 연수나 과거에 받았던

간증 이것만 가지고 신앙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진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의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서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기록돼 있고 다니엘을 비롯해서 세 친구들이 그 사건 가운데서 어떻게 믿음과 신앙으로

나만의 영적비밀을 간직하게 되었는지 잘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하나님의 비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까?


1. 다니엘은 자기 일상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3~4절)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 중에 몇 사람을 포로로 끌고 왔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곧 다니엘은 이스라엘에 있을 때 왕족 내지는 귀족의 신분이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면서 한 순간에 왕족에서 노예와 포로의

인생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인생을 살면서 이런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혹시 내 인생 가운데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설사

그런 것이 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래도 하나님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바라 볼 때, 바로 그 때 나만의 영적비밀을 경험하게 되고 참신한 신앙인이

될 참신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눔 1>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눔 2> 그 때 귀하는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했습니까?


2.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어도 매 순간이 하나님의 기회인 줄 알고 충실했습니다(4절)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북한에 있는 수용소에 당 간부가 끌려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전과는 너누 다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니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귀족 출신인데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 상실감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의 모든 학문을 열심히 배웠고,  그 결과 왕 앞에서 유창한 갈대아어로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방 땅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만의 영적비밀을 간직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나눔 3>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귀하의 환경을 원망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오늘 다니엘의 삶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여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성 경 : 누가복음 19:12 ~ 26

설 교 : 예동열 목사


   오늘 본문에 보면 주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떠나기 전에 종들을 불러서 한 므나씩을 주면서 장사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입장을 바꾸어 놓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종이라면 주인이 10명의 종들에게 똑같이 1억씩을 주고

"내가 언제까지 돌아올테니까 그것으로 장사해라."

그러면 장사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유의해서 보니 주인이 분명히 말하기를 이 돈을 가지고 장사하라고만 했지 장사해서 돈을 남기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들은 장사하라는 명령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윤을 남겨야된다는 부담감과 압박때문에 장사하는 자체를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눔 1> 귀하는 지난 9개월 동안 주님이 하라고 한 어떤 명령에 준종하셨습니까? 아니면 감동은 받았는데 순종하지 못했습니까?


   오늘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둔 이 종은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이것이 악한 종의 주인을 향한 이해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돈을 남기기 위해서 장사를 시킨 것이 아닙니다.

만약 돈을 남기는 게 목적이었다면 10므나 남긴 종의 돈을 챙겼을 것입니다. 주인은 그 돈을 다시 종에게 돌려줍니다.

주인이 장사하라고 한 목적은 그들에게 고을 다스릴 권한을 주기 위함입니다.

<나눔 2> 귀하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성경에는 분명히 한 므나씩을 열 명의 종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주인에게 가지고 나온 종은 세 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일곱 명은 어떤 사람일까요?

추측해 보건대 주인이 준 돈을 가지고 장사는 했지만 전혀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다 없애버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주인과 결산 할 때 아무 것도 내 놓지 못하고 주춤주춤하는 사이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둔 그 종이 돈을 가지고 자신있게

주인에게 들고 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직분을 맡아 최선을 다해 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우리는 멈추거나 그만두지 말고 계속 헌신하고

충성해야 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장사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눔 3> 귀하는 교회 직분을 맡아 수고하다가 뚜렷한 열매가 없어 낙심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일을 감당했을 때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는 무엇입니까?


※ 이 내용은 울산 소재 우정교회를 담임하시는 예동열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 을 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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