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간만에 서울에 출장 갔다가 저녁에 오랜 지기들을 그것도 강남 중심에서 만났습니다.

5~6명이 5~6년만에 모이는 자리라 얘기가 끝이 없었죠.

2차 맥주 한잔 하러 간 자리에서 대화 중이 ‘돌싱’이 나왔습니다.

: 어이, 돌싱이 뭐꼬…

친구들 : 이런~, 니는 돌싱도 모르나, 정말이가 ?

: 으잉, 진짜 뭔데 ?

친구들 : , 울산 촌놈하고는 얘기를 못하겠네..

(열 받아서..) : 그래 나는 울산촌놈 울촌이다. 너거는 울총이라고 들어는 봤나 ?

친구들 : 그기 먼데 ? 무슨 노조 연합이가 ?

: 니그턴 아~들이 서울서 잘리고 울산 와서 일하면 울총이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렇게 늦은 가을밤은 깊어갔습니다.

돌싱들과 함께…

 

사전검색 결과 '돌싱'은 돌아온 싱글이라고?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 교수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의하면 몰입은 ‘어떤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몰입이란 ‘다른 어떤 일에는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몰입의 즐거움>에서 첵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조건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활동의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의 난이도와 실력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사람은 어떤 활동에서도 몰입을 맛보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분명한 목표, 활동과 성과에 대한 신속한 피드백, 목표 수준과 능력의 균형 등은 몰입을 위한 외부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형성했음에도 몰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외적 조건이 아닌 내적 조건, 즉 자신의 내면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적 조건의 핵심 중 하나는 ‘집중력’입니다. 집중력은 자신의 신체 및 정신적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집중력이 없으면 사고는 허술해지고 감정은 바람 앞 불꽃처럼 흔들리며, 행동은 허약해집니다. 그리고 목표는 흐릿해집니다.

 

집중력의 수준은 기술이 아니라 활동의 유형과 태도에 좌우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일수록 집중하기 쉽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이 활동에 나란 존재를 완전하게 바치겠다는 의지와 각오가 없으면, 집중력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몰입하면 집중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집중하면 몰입에 빠집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몰입하게 되면 집중해야겠다는 각오는 사라집니다. 어떤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집중과 몰입의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중력이 몰입의 문을 열고, 몰입 경험이 쌓일수록 집중력도 강해집니다. 이렇게 집중력과 몰입은 서로를 강화합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온다. 한 시간이 일분처럼 금방 흘러간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쓸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삶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게 된다.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롭게 집중될 때 삶은 마침내 제 스스로 힘을 얻는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저, 이희재 역, 몰입의 즐거움, 해냄, 1999

저자 이름이 좀 특이하네요. 미하이가 두번씩 Mihail ?  

우리 막내딸 컴퓨터 게임하는 걸 옆에서 보면 몰입이 어떤 것인지 잘 관찰이 됩니다.  

 나는 감탄! 아내는 한숨

어쨌든 집중과 몰입, 성공과 즐거움으로 가는 길의 필수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중은 하는데 제대로 맞지를 않으니 몰입도 안되고 즐거움 대신에 스트레스와 신경질이 

벅벅~~ 신세 한탄이 절로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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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관음사에 ‘죽음 연습장’이 있다. 입구에 있는 노트에 유언을 써놓고 안으로 들어가면 관이 기다린다. 관 안에 들어가 누우면 바깥에서 그대로 못을 박아버리는 데 웬만한 강심장도 깜짝 놀란다. 숨구멍도 뚫어 놓지 않았고 판자 틈 사이에서 빛이 살짝 들어올 뿐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들어가지만 일단 들어갔다 나오면 사람이 달라진다
.
이렇게 죽는 법을 배우면 옳게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훌륭하게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다
.
그러나 아무도 죽음을 원치 않는다. 천국이나 극락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지금 당장 죽어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천국이나 극락을 가면서 무엇을 가져갈까? 따라와 줄 사람이 있을까?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는가? 가져갈 수 없는 건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사용하고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

얼마 전에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작가 겸 방송인 최윤희씨가 부부 동반 자살을 택했다. 그의 유서엔 “저는 700가지의 고통에 통증이 심해 견딜 수 없었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라며 함께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
유언장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한 준비이고 지나온 삶을 반성하는 기회이며 사후 가족 화합을 위한 안전판이다. 우리는 사망자 가운데 유언장을 남기고 가는 경우가 고작 2~5%에 불과하다
.
고고미술학자 김원룡은 72세에 작고했지만 40대에 유언장을 써 연구실 캐비닛에 보관했다. 거기에 ‘내가 죽으면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즉각 관에 넣어 곡성 울리지 말고 화장하라’는 유언이 적혀 있었다
.
‘유언장 닷컴’을 운영하던 이성희씨는 97년 회사가 부도나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무작정 자유로를 시속 180km로 달렸다. ‘오른쪽으로 손목을 조금만 틀면 고통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캐비닛에 보관한 유언장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고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얘들아, 너희들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기억 됐으면 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리 써놓은 유언장이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
소설가 한말숙씨는 유언장에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 된다”고 남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얼마 전 자살한 ‘행복 전도사’ 최윤희씨도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남편에 대한 사랑의 유서를 남겼다
.
40
대 직장 남성을 대상으로 아내에게 가장 남기고 싶은 유언을 물었더니 1위가 ‘미안하다’, 2위가 ‘사랑한다’로 응답했고 ‘재혼하라’가 ‘재혼하지 말라’ 보다 배 이상 많았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삶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제일 아름답다. 행복전도사가 행복을 전하는 데 전력투구 하다가, 배우가 무대에서 심혈을 쏟아 연기 하다가, 교수가 강단에서 강의하다가 쓰러진다면,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다 무대 위에서 죽는다면 그 이상 아름다운 일이 있겠는가!
끝까지 자기의 길을 걷는 것, 자기의 일에 매진하는 것, 그리고 거기가 자기의 죽을 자리가 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
마지막 죽음의 영수증이 날아오기 전에 죽을 자리가 어디인지 제대로 알고 삶의 불꽃을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피워 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훌륭한 유언장을 미리 써보자. 어떤 내용으로 적을까? 무엇을 남길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

윤정문 울산지검 검찰시민 옴부즈만

 

며칠전 울산 경상일보에 윤정문씨란 분이 기고한 글입니다. 글이 짜임새있고 내용이 좋아 통화라도 한번 하려고 번호를 돌렸는데 연결이 잘 안되더군요. 주말에 어두운 내용이라 그렇지만 가장 어두운 곳을 보고 있으면 나머지가 모두 밝아 보이는 법이지요.

좋은 주말, 휴식의 휴일 되시고 늘 건강하십시오.

이수목 배상

주말 인사차 보냅니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뒷산에 딸애 손잡고 올라가 보아야겠습니다.

 

뒷산하니까 문득 생각이 나네요. 얼마전 강의에서 유머전공 강사가 직접 전해준 유머입니다.

20대 – 금강산

30대 – 설악산

40대 – 지리산

50대 – 북한산

60대 – 남산

70대 – 뒷산

(각자 알아서 해독해서 음미하시길..  저는 통 무슨 말인지 ??)

 

아래 곽소장님은 LG전자 연수부에서 혁신을 주도하신 분입니다.

이수목

 

<옮겨 온 글> 

From: 곽숙철 [mailto:ksc12545@chol.com]
Subject: [곽숙철의 혁신이야기]길을 잃지 않으려면

 

No.235

2010.10.07


길을 잃지 않으려면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새벽, 할아버지와 손자가 산책을 나섰다. 날이 추웠기 때문에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고, 두 사람은 운동장에서 내기를 했다. 운동장을 가로질렀을 때 발자국이 똑바로 난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다.
손자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뎠고, 할아버지는 그의 옆에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손자가 걸어온 발자국은 비뚤비뚤 굽어 있었고, 할아버지가 걸어온 발자국은 곧게 나 있었다. 손자가 그 이유를 묻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
너는 네 앞만 보고 걸었지? 할아버지는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큰 나무를 보면서 걸었단다."

열심히 걸어 도착한 곳이 엉뚱한 데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열심히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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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타블로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러한 소요도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최근 며칠 뉴스를 못 봤더니…), 주요 일간지 사설이 도배를 하는 정도면 큰 사건임에는 틀림 없네요.

조선 중기 예송 논쟁이 생각납니다. 한 여인네 상 치르는 일로 국론이 분열되어 사색 당파끼리 소모전만 하다가 결국 무방비 상태의 전란을 치르지 않았나요 ?

한때의 군사문화적 표현입니다만 불필요한 일, 건설적이지 못한 일에 국력이 소모되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지금은 배추 농사를 걱정해야 할 때인데..

때로는 우리가 좀 너그럽고 관용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

네티즌의 시대 ! 여러분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아니 잊어버리시고 맑은 가을 날씨, 가족들과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SMLee

 

(중앙일보)

검찰이 미국 졸업장을 떼는 나라

 

첫 불씨는 스스로 당긴 거나 다름없다. 병역 면제에다 캐나다 국적이면 이미 비방(誹謗)의 표적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땅에 SAT(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와 토플에 목을 매는 기러기 부모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그는 TV에서 “시()와 에세이로 스탠퍼드와 하버드 대학에 동시 합격했다”고 자랑했다. 도처에 깔린 인화성 물질에 성냥불을 그은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난리인 가수 타블로 이야기다. 그는 가벼운 처신으로 비()호감을 자초했다.

더 큰 문제는 도를 넘는 네티즌의 공격이다. 온 가족을 검증대에 올려 난도질했다. 인터넷 카페에선 “성적표 공개하라” “출입국 기록 내놓아라”고 윽박질렀다.

타블로 측이 해명 자료를 내놓으면 돋보기를 들이대 또 다른 흠집을 잡아냈다.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분위기가 지배했다.

남의 신상은 낱낱이 까발리면서 인터넷 카페 운영자의 개인정보가 공개되자 “사생활 침해”라며 펄쩍 뛰었다. 균형감각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논란의 핵심인 ‘타블로가 스탠퍼드대를 졸업했느냐’ 여부는 판가름 난 지 오래다. 스탠퍼드 한국 동문회는 정준 회장과 우창표 총무 명의로 “타블로는 분명히 우리 동문이며 고통 당하는 그를 보호해 달라”는 e-메일을 돌렸다. 동문회는 “그와 가까웠던 친구들이 한국말을 잘 못한다”며 직접 수소문한 끝에 대학 시절 사진 3장도 공개했다.

눈밝은 사람이면 중앙일보 8 29일자에 나온 임정희씨의 ‘타블로 논란의 교훈’이란 글에서 진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임씨가 바로 스탠퍼드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포는 무섭기 짝이 없다. 거대 방송사조차 몸을 사릴 정도다. MBC보도국은 오래 전에 스탠퍼드대 교무처장을 통해 타블로 관련 취재를 끝냈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 반발로 햇볕을 보지 못했다. “괜히 보도했다가 네티즌들의 댓글 폭격을 당할 수 있다”는 신중론에 걸렸다고 한다.

 

MBC 고위 관계자는 “사실 관계보다 네티즌 눈치를 살펴야 하는 세상”이라며 혀를 찼다. MBC는 도리 없이 PD에게 타블로를 동행시켜 미국 현장 확인까지 마친 뒤에야 ‘MBC 스페셜’을 내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터넷에선 ‘MBC가 타블로에게 매수당했다’는 끝 모를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타블로 사건의 승자는 누굴까? 정작 표정 관리하는 쪽은 따로 있다. 네티즌끼리 물고 뜯는 동안 큰 재미를 본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이다.

방문자가 급증하면서 광고도 늘고 주가는 급등했다.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태 때도 항상 포털들은 돌아서서 웃었다. ‘집단 지성(知性)’이란 고상한 깃발 아래 어김없이 ‘집단 광기(狂氣)’에 편승해 왔다.

장이 설 때마다 그들은 좌판을 깔고 판돈을 챙긴다. 자꾸 참혹한 전쟁 뒤에서 돈다발을 세는 무기중개상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최대 피해자는 타블로임이 분명하다. TV 화면에 눈물 흘리는 모습이 짠하다. 과연 우리 사회의 전체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서울 중앙지검 배성범 조사부장은 “요즘 인터넷 소송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린다”고 했다.

 

타블로 사건도 양측이 고소한 만큼 수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배 부장은 안타까운 표정이다. “수사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합니다. 강도나 살인자를 쫓아야 할 수사당국이 혈세로 미국까지 건너가 대학 졸업증명서나 떼는 게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아마 타블로 사건 수사 결과가 오늘쯤 발표될 모양이다. 수사당국은 카페 운영자가 미국에 사는 50대 남성이란 사실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열심히 수사해도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게 됐다. 결국 그에게 온 사회가 놀아난 꼴이 됐다.

참고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 새 인터넷 명예훼손 사건은 50% 가까이 급증했다. 반면 올 들어 5월 말 현재 5690건의 강력사건이 미제(未濟)로 남았다.

수사당국에 살인범을 잡기보다 졸업증명서부터 떼라고 압박한 부메랑을 우리 모두가 맞고 있다. 이래도 인터넷의 악의적 비방을 ‘표현의 자유’ 아래 숨겨둬야 할까.

이철호 논설위원

 

 

(한국일보)

타진요에게 사과를 요구합니다

 

요즘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타블로 학력위조 논란이다. 한국적 코미디이고, 영화화할 만한 사건이다 싶다. 힙합 가수 타블로가 과연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서 3년 반 만에 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 왔는가?
이와 연관하여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가 생기고, 프로그램에서 스탠포드 대학의 지도교수, 친구, 교무과장이 모두 나와 '타블로는 스탠포드 졸업생이 맞다'고 확인까지 해주었는데도 카페 핵심 멤버들은 이 사실을,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인간에게 '진실'을 요구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진실'을 믿지 않는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회심리학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1957년 레온 페스팅거가 주장한 '인지 부조화' 이론에 잘 들어 맞는 케이스로 보인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의 태도는 그들이 이미 수행하고 결정한 것에 대한 합리화이며, 행동과 태도가 서로 위배 될 때 (일례로 담배를 싫어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담배를 피웠다면) 사람들은 인지적 일관성을 위해 자신이 이미 저지른 행동에 맞게 태도를 바꾼다.

, 어떤 사람이 호기심이든 아니든 타진요 카페에 가입하는 행동을 했다면, 이전에 타블로에 대한 호감도가 중립이거나 긍정적이었던 사람도 자신의 행동에 맞게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 (난 타블로를 싫어한다.)
일단 고착된 태도는 어떤 증거 앞에서도 요지부동이기 쉽다. 그런데 타진요 회원수가 자그마치 14만 명이나 된다.

타블로가 했던 말, "사람들이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거잖아요"라는 말은 인지부조화 이론의 핵심처럼 들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타블로가 국내 대학을 나왔어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타블로가 학사와 석사를 8년 만에 겨우겨우 마쳤다면 어땠을까? 타블로가 스탠포드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해서 최연소 이사가 되었다면?

이 사건의 무의식적 핵심은 타진요 회원의 간단한 인터뷰에 잘 나타나있다. "공부도 안하고 맨날 놀고 무슨 '힙합이나' 하고 다니고, 그러다가 한국 와서 유명해지고" 오 마이 갓.
그러니까 타진요 핵심 멤버는 힙합을 저열한 장르로 보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나는 죽어라 코피 터지면서 공부하는데 혹은 나도 미국에서 공부 좀 하고 있는데' 타블로의 명문대 3년 반만의 졸업은 이해 되지 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것이다.

만약 타블로가 스탠포드대 나와서 대기업 최연소 이사가 되었다면 타블로를 인정하고 기꺼이 동지나 우상으로 생각하겠지만 '힙합이나' 한 게 영 뒤틀린다.
결론적으로 타블로는 우리의 '상식'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다. 조기 졸업도 스탠포드와 힙합을 연결한 경력도 다 상식위반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상식은 과연 무엇인가? 상식을 물리쳐 버리고 다음 가사를 음미해 보라. "당신이 세상이던 작은 시절. 당신의 두 손, 내 생의 첫 저울. 세상이 준 거짓과 진실의 무게를 재 주곤 했던 내 삶의 지구본. 그 가르침은 뼈 더미 날개에 다는 깃털."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 중 일부. 아름다운 가사다.
타진요 카페 운영자는 타블로에게 즉각 사과하라.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인생의 무게에 대해 거짓저울을 갖다 대었고, 진실 앞에서 눈 감는 일을 벌였다.

타블로에게 사과하는 일은 당신들이 당신들의 그림자와 화해하는 일이다. 부디 내면에 소용돌이 치는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고 평안을 찾기 바란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요즈음 융합과 cross-over 등 경계를 넘어서는 개념과 시도들이 화두이지요.

저는 오늘 구본형 선생의 예화를 접하면서 또 다른 경계의 접촉 (contact between boundary)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1.     경계 1) 워싱턴 어빙은 미국 초기 식민지 시절의 작가로 ‘스케치 북’이라는 단편집이 유명하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유명한 ‘립 밴 윙클’ 스토리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전 자신이 립 밴 윙클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요즈음은 조금 뜸 하지만..  총각 시절 같이 지냈던 숙소 룸메이트가 이 책(스케치 북)에 대해 얘기하면서 학창 시절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며 이 책을 보셨다는 얘기를 듣고 책의 어느 부분이 그토록 감동적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더 읽어 본 적은 있지만 립 밴 윙클 외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역시 하수 !

2.     경계 2) 요즘 젊은 세대에겐 클래식 기타 연주나 듣기가 크게 인기 없는 것 같지만 우리 때는 왠만한 로맨티스트는 오른손 손톱 길게 길르고 여섯 줄 뜯기가 유행이었지요. 이때 최우선 레파토리가 로망스 (‘금지된 장난’ 주제곡) 아니면 ‘알람브라 궁전’이었습니다. 이슬람 지배 시절 이후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스페인 남쪽 어딘가에 있는 넓은 정원과 여러 개 분수를 가진 대리석 궁전으로만 알았는데…

3.     구선생님의 얘기를 통해 워싱턴 어빙과 알람브라 궁전이 만날 줄이야…  이것은 연결입니까, 접촉입니까 아니면 융합입니까? SMLee

 

<옮겨 온 글>

From: 구본형 [mailto:bhgoo@bhgoo.com]

Subject: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비둘기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옛날 그라나다에 한 무어인 왕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모두 아기 왕자가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어 그에게 알 카멜(완벽한 사람)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점성가들은 이 왕자가 성년이 될 때 까지 다정한 열정을 조심하여 사랑에 빠지지 만 않는다면 죽을 때 까지 한결같이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왕은 이 왕자를 위대한 현자의 손에 맡겨, 성년이 될 때까지 알함브라 궁전의 여름 정원인 헤네랄리페에 갇혀 지내게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왕자는 정원을 거닐며 생각에 잠기게 되고 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비둘기는 왕자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말해 주었다.

 

"그것은 혼자에게는 고통이고, 둘에게는 행복이며, 셋에게는 원한이자 싸움이랍니다. 그리움에 지친 낮이며 잠 못 드는 밤이랍니다. 두 존재를 끌어 당겨 하나로 모아 주는 것이지요"

 

  비둘기의 말을 듣고 왕자는 깊은 여름 정원의 담을 넘어 멀고 험한 사랑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순례는 아름다운 알데곤다를 만남으로써 완성되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많고 많은 전설 중에서 아흐메드 알 카멜 왕자의 사랑의 순례이야기는 백미에 꼽힌다. <옮겨 온 글 끝>

 

   워싱턴 어빙이라는 작가는 알함브라 궁정을 사랑하여, 몇 달간 그곳에 머물면서 '알함브라 이야기'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무어인들의 캐스터네츠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은빛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집시들의 축제에서 알 카멜 왕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는 이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지요.

 

    자기 경영은 비둘기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종종 그것은 느티나무의 소리 일 수 도 있고, 흐르는 냇물의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우리 속에 우주가 온전히 들어와 숨 쉬고 있고, 우리가 곧 인류 전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목소리를 따라 나서는 것이지요.

 

    가을이 예뻐, 시간이 날 때 마다 산길을 걷습니다. 가끔 나는 사라지고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바람을 타고 나르기도 하고, 작은 다람쥐의 등에 올라 나무 사이를 휙휙 건너 뛰어 다니기도 합니다. 더없이 맑은 햇살에 익어가는 쥐똥나무 열매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사라지고 없을 때, 바로 그 찰라에, 우리는 아마 루비 눈을 가진 산비둘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와은이 소설가 이윤기 선생의 별세를 아쉬워 하면서 메일 글을 보내왔지요.

 

문안 삼아 답신을 넣었었는데, 리터럴 보이스(literial voice)라는 용어와 함께 또 짧은 글이 왔고,

한참 후 두성이 글을 남겼어요. 꼬리 달린 글들을 순서대로 엮어서 정리해 봅니다.

 

<첫 답글>

 

와은의 정신세계는 점점 현장 생활로 활동의 범위와 사고의 범위를 축소시켜가면서, 바쁜 일상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뜨는 새 해를 부신 눈으로 보고 다시 아침을 여는 생활자에 비해서는 한 차원 높네요.

 

고인의 번역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른이 된 후 예전 '희랍인 조르바' 번역되어 소개되었던 것과 전혀 다

른 감동으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고인(故人)의 역서이고, 고인이 인문하계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것 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와은의 회고글 중 '학계와 문화계의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라는 부분과 '한번도 정관계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라는 부분.

그리고 인용 글  본문 중에 소개된 일화로 독자의 지적에 자신의 오역을 인정하고 전면 재 번역을 했다는 내용에서 생면 부지인 고인의 인격을 아주 부분적이겠지만 엿볼수가 있네요.

최근 작가 이문열씨가 장관 후보자로 거명되고 있는 중이어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와은이 끝내 잡아 보지 못한 '잡아보고 싶은 손' 은 그래서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아직 더 세상에 있었어야 할 손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와은을 통해 알게 된 걸출하신 분과의 만남을 부음으로 접하고, 명복을 함께 비는 것으로 인연을 열었네요.

늦게지만 그런 분이 계셨다는 것을 알려 준 와은께 감사를 드리면서, 생육제위께 쿠웨이트의 아침에 문안합니다.

 

<답글에 답글>

 

나루 대형.

 

바쁘신 중에 답글까지 해 주시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제는 늦게 사무실에 남아있다가 문득 생각이나 전화드렸는데 통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굳이 재 답장을 드리는 이유는 나루 형님의 답장을 읽으면서 글을 읽기보다는 그 음성을 듣는 듯한 느낌(착각)이 들어서 입니다.

 

평소 대화 속의 그 목소리를 그대로...(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세련되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디지털 변환을 하여 인공위성을 몇 번 갈아타며 전해 오는 변조된 음성신호가 아니라 태고의 인격들이 언어를 만들고는 주고 받았을 그 원초적 아나로그 모드로 말입니다.

9월 1일 아직은 저 바깥이 더운 저의상 정확히 가을의 첫 날일 뿐인데, 벌써 갑자기 센티멘털해지는건가요? 아니면 아침에 메신저로 뿌린 환석의 빠른 감각이 이제야 저에게 감염되는건가요?

나루 형의 아날로그 그 음성을 듣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거기에 적정한 도수의 에틸 알코올이 믹스되면 더욱 부드러워지겠죠.

그때까지는 디지털 음성이 아니어도 리터럴(literal, 문자로 된) 음성도 좋습니다.

자주 뵙고 듣겠습니다.

 

현장 안전과 건강관리에 유념하시길 바라면서...

 

<답글에 답글에 답글 - 아름다운 추억>

 

와은.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지요. 이제는...

 

평소 대화 속의 나루 형님의 그 목소리들, 밉도록 아름다운 추억이지요.

우리가 지껄이고 노래하고 한잔하고 했던 그 때가...

 

지금은 세상을 달리한 벗도,

머얼리 떨어져 이제나 저제나 돌아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벗도,

가까이 있지만 망각한 채 바쁜 척 하는 벗들도,

함께했던 그 때의 추억이 죽도록 아름답습니다.

 

언제 단 한번만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가볼꼬?

 

나는 이제 떠밀려 서울까지 왔답니다.

 

<중략>

 

우리 생육제위께

밉도록 아름답고, 죽도록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서울에서 꿇어 앉아 보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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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을 통해 뵐 수 있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아는 얼굴 (박모 부장님)도 보이네요. 언제 거기까지 가셨나 ?

산만 잘 타는 줄 알았더니 비행기도..

 

나루 행님,

담에는 주변 사비야의 모습도 보여주세요.

년말 년시 잘 보내시구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와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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