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1996. 12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기 위해 길을 나섰다. 별 생각 없이 당나귀를 끌고 가는 이들 부자를 보고 길 가던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이상한 부자로군, 타라고 생긴 당나귀를 끌고 가다니, 어리석기도 해라.”

딴에 일리가 있는 듯도 하여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가 참 어리석었다. 어린 네가 당나귀를 타도록 해라.”

아버지는 아들을 태우고 훨씬 행보가 빨라지는 걸음을 재촉하여 다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동네 영감님들이 이 모양을 보고 역정을 내면서 한 마디 하기를 “저런 천하에 고약한 일이 있나. 나이 든 아버지를 걷게 하고 어린놈이 당나귀를 타고 가다니.” 그 또한 일리가 있는 듯하여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얘야 안 되겠구나. 남들이 우리 부자를 아주 경우없는 사람으로 보니 이번엔 내가 타고 가자꾸나.”

그렇게 당나귀를 바꿔 탄 부자가 또 한마을을 지나가다가 빨래터에서 일군(一群)의 아낙을 만났다. “불쌍도 해라. 아마 친아버지가 아닌 모양이지. 어린것을 걷게 하고, 저는 편히 당나귀를 타고 가는 걸 보면.” 뜨끔해진 아버지가 말한다. “얘야 이것도 아닌 모양이구나, 자 그러면 어찌한다?”

부자는 커다란 작대기를 구하여 당나귀를 엮어 메고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음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대로 힘이 들어 온 인상이 찌그러져 있었고, 당나귀도 매달린 것이 불편하여 버둥거렸다. 이 모습을 보던 마을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하였다. 이 바람에 당나귀는 놀라서 더욱 버둥거리게 되고, 급기야 이들 부자는 당나귀를 놓치고 만다. 당나귀는 개울에 빠졌고, 네 다리가 묶인지라 흐르는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다. 흠뻑 젖은 아버지와 아들은 어쩔 줄 몰라서 “이일을 어쩌나, 이일을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세상을 사는 방법도 다단하다. 다만 기본적인 질서를 위해 규범의 틀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는 이것을 법이라 한다. 그러나 법의 기준이라는 것도 상식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 버리면 이미 일반적인 규범의 틀이 아닌 특별법이 될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양심의 소리에 늘 귀 기울여 사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벌을 가할 법은 없다.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나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역시 법 적용이전에 사회에서 지탄을 면치 못한다. 용정의 중국동포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간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쨋거나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갖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먹고사는 일상적인 문제, 취미생활, 자녀 교육 등. 이러한 생활방식은 비교적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거나, 비교적 좋은 방식이라거나 하는 나름의 잣대로 판단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가치 부정의 것은 못된다. 때에 따라서는 고집스레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줏대있는 사람으로 인정되기도 하는 것이 그 이유에서이다.

줏대란 마음의 중심이 되는 생각이나 태도를 일컫는다. 내 마음의 중심이 확고하면 주변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권고나 제안을 무시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내 생활의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면서 산다. 그것이 나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비하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는 하면서도 말이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나쁜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존심은 최소한의 자기방어다. 만약 자존심마저 잃어버린다면 세상 속에 자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도 존경받을 자리를 상실한 사람을 누구라서 존경해 줄 것인가?”

오늘의 현대맨 들이 가져야 할 자존심은 진득한 줏대가 아닐까 한다. 온갖 것이 다 좋아 보여도 내 것만은 못하다는 자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것만이 좋은 것이여.” 하는 자만심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말이다. 지금 우린 그런 줏대를 가치관으로 재확립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떠 내려가는 당나귀를 보면서 망연해하는 부자를 도와주려 손 내미는 사람들은 웃고 떠들면서 박장대소하던 그들 무리가운데 없었다. 어쨋거나 그들은 방관자로 우리가 처해지는 곤혹스런 순간들을 그렇게 웃으며 넘길 사람들이다.

문제는 우리들 자신의 신념에 찬 줏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들이 타든, 아버지가 타든, 끌고 가든 그건 우리 당나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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