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화살도 거리가 멀면...
1996. 11. 28
‘삼국지’하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았음직한 역사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의 진위가 분분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사내의 의리를 보여주고, 밥먹듯 하는 배신의 현장과 수 없는 전투 속에 만개하는 기기묘묘한 전법과 전술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소설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는터라 관우의 죽음에 이은 장비의 죽음과 유비의 죽음 뒤에 제갈공명마저 죽게되면서 삼국지의 진정한 흥미는 반감된다.
병법가 중에 제갈공명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사람의 일화는 그림 속에 나타나는 깨끗한 용모와 함께 상당히 인상적이다. 후일 그가 거느리던 장수와 전술문제를 놓고 다투는 대목이 나오는데 위군과 격전을 벌리던 중의 모습이다. 삼국지를 평가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그때 공명이 왜 그 장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아마 완전함이 아니면 택하지 않는 공명의 성격 탓이 아니겠는가 라고 스스로 해석을 하고 있다.
당시 상황인즉 위군이 10만의 대군으로 촉을 징벌하러 왔다. 10만 대군이 움직이려니 그 행군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이동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대치 상황에서 촉군의 장수 하나가 공명에게 요청한다. “내게 군사 수만만 주시면 바로 적군을 토벌하고, 비어있는 수도를 취하겠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공명이 묻는다. “그대는 어찌 10만 위군을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장수가 다시 말한다. “아무리 힘센 화살도 거리가 멀면 비단 조각도 꿰뚫지를 못합니다. 지금 위군은 단숨에 수 백리를 달려왔으니 지쳐 있습니다. 이 틈을 노려 뚫고 나가면 쉬 적의 수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공명이 대답한다. “네가 틀렸다. 우리는 우회 공격을 한다.”
끝내 그 전쟁에서 공명은 지리한 소모전 끝에 퇴각하고 만다.
당시 진언했던 장수는 그로부터 몇 년 후 공명을 배반하게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비운이 장수가 되고 말았다.
소설중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명의 너무 세심함을 나무라려함은 아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은 그 장수를 탓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흘러가는 역사의 한 자락에서는 뼈아픈 고민의 모습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쏘아 올린 ‘힘찬21’이라는 화살이 지금 어느 정도의 힘으로 날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작한지는 어언 2년이 되어가건만, 그저 바람 따라 힘 닿는대로 날아가고 있는 형국인지, 아니면 포스터에서 보듯 힘차게 과녁을 꿰어 뚫고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역사의 교훈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지금 우리가 전개하고 있는 ‘힘찬 21’은 2년 후 3년 후 경과를 보아가면서 재차 시도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지지부진하게 비행거리만 유지하자는 것도 아니다.
쏘아 올린 힘이 소진되기 전에 우리가 관통시켜야 할 혁신의 과녁들이 있는 것이다. 힘있는 화살들이 적절한 시기마다 각각의 과녁을 향해 당겨지고, 날려져야 한다.
그러나 취지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세월을 두고 실천을 미루고 있을라치면 조만간 화살은 힘을 잃고, 비단자락도 뚫지 못하는 힘겨운 화살이 될 것이다. 삼국지 역사 속에서 공명이 사용한 우회전술은 때론 적군의 허를 찌르는 효과적인 전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비길 수 있었던 것마저도 다행스러웠던 힘겨운 전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의 장면을 오늘날로 끌고 와서 살펴보면, 세계의 적들은 결코 우리의 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비길 가능성조차 없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힘센 화살도 거리가 멀면 비단자락도 뚫지 못한다.” 새겨 봄직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