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는 모습들이 다 그랬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었다는 것인데...
공부방을 따로 갖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식구대비 방칸 수가 적은 것도 이유겠지만, 방이 있었다손쳐도
겨울철 난방을 위해 나무를 해 대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닌 것도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한다.
깔끔한 성격의 고모부는 명목상 오류광산의 대표를 지내고 있었으니까 전문경영인 격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총무님'이라고 불렀다. 이제 생각해보니까 사업대표로 등재는 해 놓고, 관리적인 일만 총괄하도록하는 역할을
맡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급여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이해가 되고, 회사에서 제공해준 소위 사택은 일제시대때
지은 건물로 이른바 도당집(양철지붕을 얹은)이었는데, 군데 군데 오랜 연흔의 녹이 있었고, 나무틀을 치고 채운 석회담은
여기저기 흰색 가루를 날리고 있었다.
회사의 배려로 사택을 수리하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니 집 상태는 점점 낡아가는 것이 당연스러운 그런 환경이었다.
내가 얹혀살던 고모집은 긴 'ㄱ'자 집으로 복도를 통해 두개의 부엌과 4개의 방이 연결되는 구조로 나고들기가 썩 편하게 지어진 집이었다.
그 중 끝 쪽에 앉힌 방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어서 도합 방 4칸 짜리 집 구조였지만 방 3개중 하나는 문서고겸 창고로 쓰고 있었으니까
방 2칸에 온 식구가 모여 사는 형태였다.
고모집은 내 위로 누나가 하나 있었고, 밑으로 여동생이 셋 있었다.
남자라고 해서 따로 공간을 내 줄 여건이 안되는 입장이었으니, 고모나 고무부의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을 수 밖에 없었고,
누나는 민감할 나이였을 것으로 미루어 상당히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내색않고 남동생에게 기꺼이 자기 공간을 할애해 주었다.
그런 공간 여건이고 보니 안에 있는 벽조차 온전히 내 공간 삼을 만한 곳이 없었던 모양으로...
난 집게하나를 복도 벽에 걸고 주말고사, 월말고사 시험지를 몽땅 걸어놓았었다.
자랑스런 전리품이었으니까..., 앞서 회술했거니와 그 학교는 재정여건이 좋지 않아서 매월 수업료를 내어야했고,
매월 장학생 발표를 했기때문에 그게 아주 큰 재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집게에 철해 둔 시험지가 꽤나 두툼해진 10월의 어느 날 그로 인해 전혀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게된다.
요즘이야 종교적인 용어를 아는지라 '하나님 인도하심'이란 단어로 감사를 표할 수가 있었지만,
당시로서야 '이 무슨 이런일이?' 정도의 놀라움이었달까?
정규중학교로 전학 추진을 해 주겠다는 전격적인 제안을 받게된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자랑를 좀 더 하자면, 시험지를 주루룩 넘기면서 보면 9자를 찾기가 힘드는 성적이었다.
제안을 하셨던 분은 목사님이자 해당학교의 이사장이셨던 분이시니까... 뭐 큰 조건이 걸릴 것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무적인 사항은 선생님들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이젠 정과 실리간에 갈등이 조금 있었고, 더 이상 야간수업을 받을 여건이
안되는 처지가되니까 낮에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 내겐 부담이었다.
내 조건이 잘 전달되었던듯 그 학교에서는 "전학 한 달 월말고사 성적이 규정에서 정한 수준으로 나오면 장학금을 지급한다." 는 조건을
수락받았다. 전학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 달 월말고사를 통해 난 수업료 전액면제 장학혜택을 취득하게 된다.
이제 국민학교 5학년 중퇴의 아픈 기억은 더 이상 내 핸디캡일 수 없는 자격을 얻게되었다.
고마운 벽걸이 게시판을 통해 얻게된 행운...
금수강산 삼천리/ 서울의 남단/ 만수산 우러러/ 세워진 동산
믿음위에 터닦고/ 세워진 학교/ 우리 모여 배우네/ 겨례의 새싹
아~아~아 /거룩하고 윤택한 상아탑
하나님과 땅 사랑을 지표로 삼고/ 온 세계에 길이 빛날 ...
정규 중학교인 성택중학교로 전학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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