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골목은 내겐 오랜 추억을 제공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 곳을 기억하는 건.

거기 모여사는 사람들은 그저 구두를 기울 뿐이고, 그저 호떡을 굽는 것 뿐이고, 그저 옷을 파는 것 뿐이고,

그 중 '나까마' 라고 하는 사람들은 옷 가지를 팔에 걸고 골목을 거닐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상대로 판매행위를

했다. 추웠던 날로 기억된다.

나까마 아저씨 중 한 아저씨가 꺼이 꺼이 목울음을 하고 있었다.

나 중 안 사연인즉, 친히 지내던 친구뻘 되는 아저씨가 간밤에 노상에서 죽었다고 했다.

머리 맡에는 늦 저녁을 먹은 것을 토한 듯 국수가락이 얼어붙어 있었다고 했다.

나까마 아저씨를 울게한 건 그 국수가락이었는데, 두 분이 말다툼 끝에 한 나까마 아저씨가 악담을 했다고 했다.

"에라이 국수 쳐먹은 것 토하고 뒈질 놈아!"

근데 그게 밤사이에 진짜 현상으로 나타났으니...

 

골목은 그랬다.

사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살고 들 있었고,

그런 그런 사람들이 등을 서로 기대고 사는 그런 곳이었다.

의리가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서로 돕고 산다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서로 사는 것이 빠듯한 사람들끼리 그렇게 사는 곳.

 

골목 풍경은 이랬다.

시내 방면서 청량리 역으로 가는 방향 요즘은 아마 맘모스빌딩인가 하는 건물 못미쳐 청량리 극장이 있는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길 양쪽이 시장이었다. 그중 왼쪽이 재래시장으로 식품들을 팔았고,

그 맞은편 골목이 청량리 역에서 이어지는 골목시장이었는데,

주로 옷가게가 많았고, 구두 수선 및 재생하는 가게, 값싸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냉면가게, 라면가게, 그리고 호떡집이 두어 곳이 있는

골목이었다. 뒤 편으로는 서울대 사대부고가 있어서 점심 시간이면 남 학생들이 너댓명씩 몰려나와서 호떡으로 점심을 때우고

가기도 했다.

 

그 골목엔 싸게 이발을 할 수 있는 이발소도 한 군데 있었는데,

거기서 일당제로 잔 심부름을 하면서 손님들 머리도 감겨주고 하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여기(호떡집)에서야 먹고 자는 것으로 그저 때우고 있었던 데 비하면 돈벌이가 되는 제안인지라 일단 옮기기로 했다.

그리가면 머리 깍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돈을 벌 수 있으면 공부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어린 기대가 작용한 것도

없지 않았다. 옮긴 날 부터 잠 자리는 이발소 의자가 되었고, 아침은 거르고, 점심 저녁은 라면집과 냉면집을 오가면서 해결하는

본격적인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밥 두끼를 해결하면 하루에 모을 수 있는 돈은 50원이었던가?

어쨋든 이젠 적으나마 돈을 모을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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