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여기서 살거야?
모든 것이 낯선 현장에 도착해서 전임자로부터 이것 저것 인수 인계를 받던 중 친절하게도 현장 소장이 직접 현장 안내를 하시겠다고 했다.
공정 전반이야 본사에 발령 대기 하고 있던 한 달여간 대충은 훑어 본 바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공장이 컸다. 규정상 공장 내에서는 도보 이동을 금하고 있다고 했다. 공사 초기 방문자가 많았던 듯, 공장 전체의 레이아웃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브리핑 포인트를 표시해 둔 자료가 있었다.
차의 진행 방향에 따라 레이아웃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면서 방향을 가늠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인문학도의 비애다. 그림과 실물을 가늠하지 못 하는…
공장 전역을 둘러 설명을 하던 소장이 한 곳을 지적하면서 말했다. “건설은 제조업하고는 아주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합니다. 중공업 사람들 참 일을 잘해요. 너무 잘해서 그게 탈입니다. 건설은 대충 해 주고 손 털고 나가야 하는 업입니다. 그런데 중공업 사람들은 너무 잘 해 주려고 해요.”
건설업과 제조업은 생리가 크게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빙 원을 그려 보여주는 곳은 소방관 숙소지역이었다. 그 일대 구 건물을 일부 보완 하는 작업을 했던 모양이다. 창틀교체, 담장보수, 페인팅 등… 그 일을 너무 꼼꼼하게 하는 바람에 의외로 시간을 많이 뺏겼다고 했다. 지금도 잔 손을 봐 주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고도 했다.
몇 번의 지적에도 불구하고도 대충 끝내기에 영 서툰 것이 현대중공업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 때 그 자신도 현대중공업의 일원이었다가 다른 회사로 옮겨서 여러 현장을 경험 한 이후 다시 인연을 맺게 된 입장임에도 그는 이야기 끝에 꼭 남의 말을 하듯 “현대중공업 사람들”이라고 지칭했다. 완벽한 품질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품질의 수준이 문제란 생각이다.
본래 Quality와 Cost 그리고 Delivery는 이론적으로 삼면 등가에 기초한다. Quality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Cost가 높아지면서 Delivery가 길어진다. 그래서 정도의 문제를 놓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을 다 둘러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한 마디 덧붙였다. 보다 보다 답답해서 “당신들 여기 살거야?” 라고 한 마디 했다고…
정도(正道)와 정도(程度)는 같이 발음하는데도,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2008. 12. 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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