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신 제위께.

 

 빨간 글씨로 마감된 11월을 꽉 차게 마감하고, 12월을 맞았습니다.

 

 태정이 보내 준 12월 첫째 날 인사를 무겁게 받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일 수 밖에 없는데,

어느새 나 자신 아버지의 자리로 오래 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를 보면서 느끼던 그 생각들을 우리 아이들이 하면서,

또 다른 아버지를 준비하고 있는 세대라는 얘기지요.

 

 가끔 거미 줄에 껍데기만 남아 흔들리는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잔 바람에도 이리 저리 흔들리는…

거미는 그렇다네요.

새끼들에게 먹이를 잡아서 먹이는 것이 아니고,

어미 뱃 속에 품은 채, 어미 살을 먹고 크게 한답니다.

새끼들이 어미 몸 밖으로 나오게 되면 어미는 껍데기만 남아, 그렇게 매달려 있게 되는 거지요. 교훈적인 얘기로 많이 쓰이는 예화입니다.

어미 몸 밖으로 나온 거미 새끼들이 줄에 매달린 제 어미를 보면서 그런답니다.

“야! 우리 엄마 그네 잘 타네.

 

 우리가 아이들 앞에서 절규하듯 “남자라는 이유로”라는 노래를 만일 부를 기회가 있다면, 아이들이 그 속내를 들여다 보려고 하겠나요?

‘우리 아버지 보기 보다 노래 잘하네. 감정도 좋고…’ 혹 이럴지도 모르지요.

정작 그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 아버지는,

아버지란 이유로, 또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긴 세월의 회한을 토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태정이 왜 12월 첫째 날 이리 무거운 아버지를 불쑥 내밀었을까요?

1년 중 가장 큰 숫자 12월을 맞으면서, 무거운 인생의 또 다른 짐을 느껴서 일까요?

 

 생육신 제위 아버지들께 태정의 인사 답글 차 무거운 아버지를 보냅니다.

 마지막 남은 달. 뭔가로 꽉 채우고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8. 12. 1.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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