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은 간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중 기억과 조합해 보면 난 당시 국민학교 책과 검정색 앨범이 들은 빵빵한 가방을 늘 들고 다닌 것 같다.
아마 곧 쪼개질 가족들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듯.
어른들의 결정으로 인연을 맺게 된 새 고장 운천은 그저 그런 감정으로 나를 맞았다.
시외버스를 탔을테고, 의정부, 동두천, 포천을 거쳐 야미리와 운암리 경로를 지나서 운천 버스터미널에 내렸을 것이다. 거기서 시장통을 지나 미군부대가 있던 지역으로 약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긴 개울을 끼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운천2리?
나무로 울타리가 둘려쳐져 있고, 문이랄 것도 없는 사립도 닮은 모양으로 마당과 길의 경계를 빼꼼 보고 있는 집이다.
집은 두 칸형으로 안채가 있는 도로 쪽으로 독립된 부엌과 방 한칸을 세들어 들어갔다. 바로 옆에 주인이 살고 있었고, 바로 곁으로 약간 떨어져서 방 한칸과 부엌 한칸을 따로 세 주었다.
도합 세 가구가 사는 나무 울타리 집이었다.
어른들의 변은 그랬다.
연고와 멀리 떨어져서 아무도 모르는델 가면 체면이고 뭐고 막일이라도 해서 먹고 살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게는 산 같이 크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노동능력은 그닥 신통치가 않았던 모양으로, 지속적인 노동 수입이 보장되질 않았다.
운천이라는 동네는 당시엔 그랬다.
연대 병력급 미군부대가 중심되는 내를 낀 위치에 주둔하고 있었고, 그 반대편 산 기슭을 끼고 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유일한 태국군 부대라고 했다.
황해도 연백을 떠나 6.25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은 부모세대들이건만 태국군 부대의 주둔은 아픔이기 보다는 운천의 자랑거리로 이용되곤 했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한 태국군 부대가 있다고...
결국 파주나 동두천 등 지역과 다를 바 없이 이들 군인들을 상대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주 사업군이 되는 경제 특성을 가진 지역이 운천이었다.
어린 나이에 거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찬란한, 내가 사는 집에서 불과 3~4분만 걸어나오면 세븐, 백양 등 이른바 바가 즐비했고, 낮과 달리 밤이면 각양 각색의 불들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그 바들을 중심으로 아줌마(누나)들이 많이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비교적 빨리 알게되었다. 같은 집에 사는 칸나 아줌마도 그런 아줌마 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한 집에 산다고는 하지만 자주 볼 수는 없었는데, 나에게는 비교적 친절하게 대해 주는 아줌마였다. 그땐 누나라고 호칭하기엔 너무 어른이어서 그냥 아줌마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아무 일이나 한다는 각오로 이사를 간 곳이었지만, 여건은 호전되질 않았다.
형과 나는 중량교에서의 생활 경험을 살려 우리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 중 주가 되는 일이 이른바 마대를 하나씩 둘러메고 미군부대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오면 재수 좋은 날에는 탄피 같은 것도 주울 수가 있었고, 철조각이며 뭔가 있음직한 곳을 파 보면 새 날개 모양의 훈장 같은 것도 주울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탐지기라는 것을 들고 다니면서 고철을 수집했다.
하루 수입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가는 길에 고구마 밭이 걸리면 고구마 이삭도 줍고, 한 겨울엔 무우 밭에서 아직 덜 자라 버려 둔 무우를 주워오기도 했으니까 진짜 그 일이 생업이었던 셈이다.
당시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영화가 알려지면서 대구의 이윤복이라는 소년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어린 나이에 느껴지는 기분은, 그 사람이 사는 정도가 우리보다 더 어려웠을까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해서 대통령 할아버지께 편지를 보내서 아버지의 구직을 요청해 보았는데, 통 답이 오질 않았다. 큰 맘 먹은 효도가 먹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운천서의 생활은 가난의 실체를 절절하게 알려주면서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만난 인연이 있어, 좀 늦기는 했지만 영북 국민학교에 전학 절차를 밟아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명성산 높은 하늘 새날은 밝아 각흘봉 한 기슭에 안개 뿜(품)는다.
한탄강 가는 물에 희망을 싣고/오늘도 어린 싹은 자라고 있네
무럭 무럭 자라는 영북건아야/삼천리 이 강산에 빛을 이루세
그리 자랑스럽게 불렀던 교가이련만 기억이 받쳐주지 못함이 안타깝다.
'친구방 > 나루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증막 집(추억 9) (0) | 2014.04.11 |
---|---|
그래서 세상은 좁은지?(추억 8-2) (0) | 2014.04.02 |
중량교(추억7) (0) | 2014.03.20 |
전해 받은 글인데...반기문총장의 어머니 이야기. (0) | 2014.03.17 |
전화 시간 맞추어 통화하기도 쉽지가 않구나. (0) | 2014.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