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생이면 어리다고 할 수 있을 나인가요? 따지고 보니 그럴 나이도 아니네요. 40을 넘긴 나이니 말입니다. 시인의 나이 40이네요.
不惑 이라고 하는 40이 되었을 때 전 많이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우울도 했습니다. 왜냐면 세상의 유혹은 아직 너무도 많은데, 전 아직 세상을 그리 담담한 눈으로 볼 수가 없었던 이유였지요. 해야 할 일도 많다고 생각이 되었고, 성공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곧 ‘승진’ 이라는 단어와 맞물려서 사고를 압박했었습니다.
그런 40을 지내도, 크게 이룬 것 없는 다른 10년을 보내고 50이 되었을 때는 오히려 덤덤했습니다.
不惑에 비해 知天命은 너무 큰 의미여서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평균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이런 연령별 성숙의 기준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대충의 성장시기를 비해 보면 그 정도가 너무 비슷합니다.
30세 자립을 하여(立志), 40이면 미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不惑), 50이면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60에 세상의 이치를 저절로 깨닫고(耳順), 70이면 마음이 하고자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從心)
따지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40이면 치열하게 경쟁하는 생활의 각축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경쟁의 시기가 아닐 수 없으며, 생활인으로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도 만들면서 이해관계를 형성해 가는 어찌 보면 피 흘리는 시기입니다.
그러다가 나이 50이 넘으면 접을 것은 접고, 챙길 것은 챙겨서 하늘이 정하신 내 인생의 위치를 잘 가늠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 참 불혹에 비해서는 높고 높은 뜻이어서 오히려 쉽게 보낼 수 있었던 50이었다고 보는 거지요.
이번엔 耳順이 덜미를 잡습니다. 세상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온갖 소리를 그저 듣는 것 만으로도 그 뜻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는 뜻이라니 말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렇게까지 도사의 경지까진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잘 듣는 두 귀를 중히 여기라’는 뜻은 아닐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40줄에 오른 시인은 말합니다. “어차피 인생의 기록은 부끄러움의 기록인 것을, 그 기록이 맞춤법에 좀 어긋나면 어떠냐”
지극한 공감에 괜스레 슬퍼집니다. 지금까지 전 제 부끄러움을 기록하기를 주저했었습니다. 기록물이 맞춤법에 어긋날 것을 우려한 까닭이었지요. 남에게 보여질 기록으로 잘 치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혹 아닐까요?
밤의 공 벌레
―이제니(1972∼)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 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 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공 벌레는 '위험을 느끼면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마는 야행성 벌레'다. 사람에게 특별히 해를 주지 않으나 생김새가 불쾌감을 준단다. 공 벌레 눈에는 사람 생김새가 불쾌할 테다! 기어가는 공 벌레를 보고 화자는 제 그늘을, 제 어둠을 응시한다. 삶의 그늘에 저항하는 한 방식이 세련되고 재밌는 시어들로 절절이 그려져 있다. 이제니의 언어 감각은 발군이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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