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도 그리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어릴 적 파리라는 도시는 유독 예술적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모르지요 파리 여성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니 더욱 그랬었는지도…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더이다. 그저 껍데기만 본 소회로는 말이지요.
아무데서나 담배피고 – 특히 여성 흡연자가 많습니다. 공항서도 개 끌고 다니고…
그렇다고 하고요. 센강은 프랑스 전역을 휘감아 도는 대표적인 강입니다. 특히 에펠탑을 중심으로 박물관이 있는 관광 명소 집결지에는 아름다운 부조로 장식한 많은 다리를 거느린 도도함도 일부 있는 강입니다. 그러나 도도하다고 한 표현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센강이 섭섭할 것 같아서일 뿐,
사실 청계천 정도의 폭에 준설 공사로 바닥을 깊게 파고 강 주변에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을 조금 마련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래도 유람선이 다닐 정도는 됩니다. 그 중 미라보 다리가 어떤 다린지 확인을 해 보진 않았는데, 그나마 가장 정취있을 지역이 시내에서 노트르담 성당(사원)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가 아닐까 싶습니다.웅장하면서도 아름답기가 그지 없는 노트르담 성당을 끼고 흐르는 센강도 제법 세가 있거든요.
시 중에 ‘종아 울려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라보 다리는 이 다리가 분명합니다.’ 충성! ….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아폴리네르가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을 그리며 이 시를 썼다는 설이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가 옛사랑의 장소에서 사랑과 인생의 깊은 맛을 곱씹는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그 순간 실제로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테다. 비애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위안을 주는 저녁 종소리. 화자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실연의 처절한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을 삶의 한 양태로, 자연의 이치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피 끓는 한창 나이에 이렇게 정신이 성숙하기도!
이것이 시다! 정치판도 뒤숭숭하고, 우중충 삭막한 나날인데 봄의 나무에 수액 올라오듯 시흥(詩興) 도도한 시를 읽으니 기분이 산뜻해진다.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예술의 힘! 이러한 시가 점점이 모여 파리라는 도시의 아우라가 생긴 것. 프랑스 사람이 아닌 독자들은 이 시에서 이국정취를 물씬 느끼리라. 이국정취란 먼 곳으로 이끄는 힘이다. 사람을 상당히 설레게 한다. 사랑의 도시, 낭만의 도시, 예술의 도시. 파리, 파리, 파리! 우리나라에도 어디엔가 사랑과 낭만이 흐르는 강과 다리가 있을까? 서울의 강과 다리는 넓고 깊은 강 위에 높은 다리들, 거기에는 자동차들만 쌩쌩 달리지. 그 광경을 떠올리고 가슴 설레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으리.
황인숙 시인
'시로 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명? 토끼? (0) | 2013.11.30 |
---|---|
설탕 탄 막걸리 한잔에 눈발을 바라보며... (0) | 2013.10.26 |
잘 못든 여행지가 더 여행다울 확률은 상당히 낮을겁니다. (0) | 2013.10.26 |
저녁 연기 같은 것. (0) | 2013.10.26 |
서정시 다운 서정시 (0) | 2013.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