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우침이라는 것이 어떤 땐 당최 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알아서 다 좋을 건 없다는 그런 거지요.
TV 프로그램 중에 산속에 숨어 사는? – 혹은 자연을 즐기면서 사는 – 사람들을 찾아가서 1박을 하고 오는 것을 밀착 취재하는 형태로 엮은 것이 있던데,
사실 큰 감동은 없지만 그래도 싸우는 양은 아니어서 그저 보는 편입니다. – 일부러 찾아서 보지는 않아요. 틀다가 걸리면 보지.
산 속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지, 뭐 달리 차별화되고 은둔이 뭔 생의 부족을 채워 줄만한 크기의 넉넉함으로 다가온다고 하데요?
누군 운명더러 ‘비켰거라’ 했다던데, 사실 용 빼는 재간이 있나요?
귀 잡힌 토낀걸.
너무 일찍 사람들은 적응하는 법을 배웠어요. 힘 앞에, 권력 앞에, 운명 앞에…
이른바 사회생활이라는 그들의 법칙 안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몰랐으면 어떨까 하는 정말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는 거지요.
한번쯤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고요.
그 놈의 범은 무서워서 피해 살아도, 항시 주변에서 발톱을 세우고 가까이서 위협하는 존재였어요.
이 날까지…
토끼 (유홍준(1962∼))
커다란 귀때기 두 개를 말아 쥐고
들어올린다.
빨간 눈알 두 개를 들여다본다.
하얀 눈밭에서 토끼를 움켜잡은 사람이,
두 귀를 붙잡힌 토끼가 버둥거린다.
허공 중에 버둥거리며 네 발을 휘젓고 있다
오오, 누가 귀때기를 움켜쥐고
저울질하듯
한 생명의 전부를 들어올리는가
오오, 이 세상 어떤 영혼
또 어떤 영혼의 전부가 저렇게
꼼짝없이 붙잡혀 들어올려져 버둥거리는가
두 눈 가득 빨갛게 피가 몰린 토끼의, 생명의, 무게의
눈알이여
커다란 귀때기여
쫓고 쫓기느라 토끼도 사람도 숨을 헐떡였을 테다. 결국 토끼는 잡히고, 하얀 눈밭의 차갑고 맑은 공기 속에 사람도 토끼도 하얗게 입김을 뿜었으리. '커다란 귀때기 두 개를 말아쥐고 들어올려' '토끼의 빨간 눈알을 들여다보는' 순간 화자는 사냥의 상쾌함도, 포획의 즐거움도 잊어버리고 한 생명의 온 무게에 아연해진다. 그리고 그 '버둥거림'에 공명한다. 내 손아귀에 잡혀 공포와 생명의지로 버둥거리는, 그러나 살고 죽는 게 내게 달린 토끼. 나도 더 큰 손아귀에 잡혀 움쭉달싹 못하는 토끼일 테지. 더 큰 상대, 자연이나 신이나 운명 앞에서 인간은 토끼다, 라는 '허구'가 화자한테 생생해지는 순간인 것. 철학적이고 거시적인 시!
인간은 토끼보다 크다. 인간보다 큰 것으로는 자연이나 신 말고 뭐가 또 있을까? 크다는 건 힘이 세다는 거다. 운명을, 결국은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힘, 한 개인의 삶에 중력 같은 영향을 끼치는 힘. 바로 자본의 힘, 권력의 힘일 테다. '권력이란 시공간을 지배하는 힘'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우리, 한 개인은 자본의 힘에 휘둘리고 그 손아귀에 붙잡혀 버둥거린다. 세상에 섞여 사는 한, 더러워도 무서워도 피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 귀때기가 커다랗고 쫑긋쫑긋 예민하면 뭐하나. '말아쥐고 들어올리는' 손잡이에 불과하기도. 그러나 권력도 더 큰 권력 앞에서는 토끼이고, 아무리 큰 권력가도 자본가도 결국은 죽는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지구도 태양계의 한 행성일 뿐.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겼다 놨다 한다. 더위를 관장하는 태양 아래서 올여름은 우리 모두 꼼짝 못했지.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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