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서 수필가로 활동하시는 지인이 딸 아이를 시집 보내고 난 후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닮은 꼴



풍경 1. - 1988년


‘아빠! 사람들 너무 하죠? 이렇게 좋은 걸 막 버리니 말이예요.’

주말이 되어 울산에서 대구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딸아이가 등 뒤에 멘 분홍색 책가방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얘기하였다.

아내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파트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놓고 간 책가방을 주워 와서 정성껏 빨아 말려 딸아이에게 메어주며,

‘오진아! 사람들 너무하지? 이렇게 좋은 걸 막 버리니 말이야.’하고 했던 아내의 말을 딸아이가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7살 난 딸아이는 집에서 놀 때도 그 가방을 메고 놀고, 가끔씩은 거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학교 가는 연습을 하였고, 잘 때도 그 가방을 머리맡에 소중하게 간직하며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입학 후에도 그 가방을 메고 즐거운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이후에도 아내나 딸아이의 주워오는 악습(?)은 계속되어 집안 살림의 태반이 이곳저곳에서 주워 온 것과 아름다운가게, 녹색가게 등 중고품 가게에서 사온 것으로 가득 차, 이제 더 주워 오려면 전에 주워 온 것 중 안 쓰는 것은 다시 가져다주고 다른 것을 가져오는 중고품 쿼터제(?)까지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의 거리에서 주워오기와 아름다운 가게 출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니 그 법의 효력은 그다지 크지 않은 듯하다.



풍경 2. - 2010년


 ‘어머님! 저희들을 위해 저 비싼 새 장롱을 장만해 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솔직히 제 마음을 말씀드리면 저 투박한 탁자와 낡은 소파가 더 마음에 듭니다.’

딸아이의 결혼식을 며칠 앞둔 지난 주 나는 아내와 딸아이의 신접살림을 정리하기 하기 위해 미사일 포대가 있는 산꼭대기 숲속의 장교관사를 찾았다. 딸아이는 직장관계로 부산에 있어 신접살림을 꾸리고 정리하는 일은 아내와 예비사위의 몫이었다.

아내는 주방기구를 정리하고 예비사위와 나는 소파커버를 씌우는 일과 거실 정리를 맡았다.


탁자는 지난 97년 내가 불가리아에 근무할 때 현지 불가리아인 목수에게 부탁하여 송판을 직접 사서 제작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책상과 식탁을 겸한 긴 탁자이다. 지금은 중간에 금이 가고 다리도 세련되지 못한 무 다리 처녀처럼 뚱뚱한 10년이 넘은 고물이다.   

소파 또한 불가리아 근무 시 본국으로 귀임하는 영사님 가정에서 한 10년 쯤 쓰다가 우리에게 물려주고 간 것이었다. 불가리아에 근무하는 4년 동안 이 소파를 잘 쓰고 나니 내가 본사로 복귀할 때쯤에는 소파의 천이 얇아져 속이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귀국 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나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구태여 소파카버를 장만하여 새것처럼 다시 사용하였다. 2001년에 본사로 들어왔으니 귀국 후 이미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저 소파도 이제 많이도 늙었다.

딸아이의 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오랜만에 소파커버를 벗겨 깨끗이 세탁하여 소파 셑트 중 2인용 하나를 딸아이에게 분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낡아빠진 소파커버를 함께 씌우며 즐거워하는 예비 사위의 모습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분홍빛 중고가방을 메고 행복해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2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겹쳐 보인다.


‘두 녀석 다 하는 짓이 꼭 같구먼!’


밤이 깊어서야 군데군데 우유 빛 수은등이 흐뭇한 산길을 아내와 함께 내려왔다. 발아래 흐르는 태화강 양안을 따라 불빛들이 은하계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201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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