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스럽기는 현상의 정의에 대한 명확한 이해의 정도만 있을 뿐 대상의 구분이 모호하기로는 매 한가지일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살면서 매번 어떤 정의로 내 살이의 일부분을 정리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 보가 귀찮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대부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면 영위해야 하는 삶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양은 그저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합니다. 때론 그것이 극히 경계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며칠 전 한 친구가 서류를 슬쩍 디밀면서 "행복 전도사가 자살한 것을 알고 계십니까?" 라고 하데요.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엉뚱하게 행복을 전하는 젊은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많이 놀랐지요. 이름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구요.

사실 어떤 정황에 얽매이는 것도 싫거니와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은 그저 지나가는 것도 괜찮거든요. 그러다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처럼 '최효종이었던가?' 하면 그만이구요.

얼른 그 친구가 떠 오른 것은 자살했다는 행복전도사분도 최씨 성을 갖고 있었던 이유였을지 모릅니다. 말을 꺼낸 친구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 한번도 이름을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걸보면 나도 참 무던하다 싶긴했습니다.

 

그 분 꽤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도 했었구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 분의 영향을 받았음직도 합니다.

특히 신문기사를 통해 본 그 분의 말 "밥은 굶어도 희망을 굶지마라.' - 또 기억의 한계가 괴롭힙니다. 희망을 굶지마라라고 해 놓고 보니까 잘 안 어울리네요. 그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데...

 

혼란스러운 건.

그 분의 돌연한 자살이지요. 주변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기사에 의하면 '집안 정리를 한 것으로 보아 자살을 준비했던 것 같다.'라고 했으니 본인으로서는 돌연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그 분은 또 그런 말도 했던걸요. "행복 그게 뭐 별건가요?"

그랬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많은 기회에 걸쳐 많은 말씀을 하셨을테고, 주제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았을텐데요.

그 중에는 '죽어야겠다.' 던 사람을 죽음대신 희망으로 삶의 모양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꾼 사람도 있었을테구요.

 

그러나 끝내 그 분이 말씀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행복의 진정한 정의'

그래서 그 분은 '죽음'조차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일 수 있음을 끝으로 그 분의 수업을 마친 것일까요?

 

지고한 가치를 비교 하는 것이 얼마나 속물적입니까만은 그게 그 분의 마지막 수업이었다고 치더라도, 또 하나 궁금한 것은 그 분과 그 분의 남편 중 어느 분이 더 행복한 분이셨을라나요?

 

이 생각 끝에 미치는 '선생님' 과 '교사', '목사님'과 '목사', '스님'과 '승려' 뭐 이런 단어들이 혼란스럽게 교차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혼자 생각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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