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블로그 글들을 뒤적이다 친구의 인용글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아주 글을 깔끔하게 쓰는 친구죠.
때론 사고수준의 차이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하기가 좀 난해한 때도 있습니다.
오늘 접한 글은 "유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행복전도사로 잘 알려졌던 최윤희씨의 동반자살을 주제삼아서 유서의 몇몇 예를들어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멋지고 간결한 논조가 좋아서 인용했노라고 글의 출처를 밝혔고요.
최근 아주 허망한 두 부고를 접했습니다.
과거 직장 동료였었던 분의 부인의 부고가 그 첫번째고,
가깝게 지내던 직장 후배 부친의 부고가 그 두번째입니다.
통상 단톡방엔 어떤류의 부고가 떠도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란 유감의 뜻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배웅의 인사를 먼저 올리지요.
또 부고에는 망인의 사망 이유를 밝히는 것이 통례인데, 이번의 두 건은 모두 그런 내용이 없었습니다.
해서 다른 분들의 유감내지 배웅의 글 밑에 '어쩌다가 이런 일을 당하셨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기가 막힌것은 두 분다 그야말로 졸지에 돌아가셨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어제 병원에 들어가셨는데 오늘 돌아가셨다는 기가막힌 답이었지요.
그러니 가족들 손 붙잡고 잠시 지난 생을 회고하면서 '남길 말씀'을 남기실 여유가 있을리 없었겠지요.
하긴 긴 투병이라고 해서 남길 말씀을 다 남기는 것이 아니긴 하지요만.
그래서 생각해 보는 것이 내가 죽음 앞에서 내 남은 사람들에게 남길 말은 어떤 말일까? 라는 거였는데요.
참 정리가 안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앞의 친구가 인용한 글에선 남편보다 먼저 가신 부인의 '네 아빠 재혼은 안된다' 라는 유언을 예로들었습니다.
너무 너무 큰 사랑을 놓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천국서 다시 만날땐 잠시 떨어져있던 그 모습 그대로 만나길
희망했던 까닭이겠지요.
어린 시절 '넌 참 일기를 잘쓴다'는 칭찬을 들은 후로 오늘 일기를 알찬 내용으로 채우기 위해 글거리가 될만한
행동들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언의 글도 남은 가족들에게 없어진 나의 존재를 잘 정리해서 남길 글이어야 할테니 이제부터라도 유언을 위한
잘 의도된 행동들을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의 인용글에서 어떤 사람은 또 '내가 죽으면 곡하지 말고 내 입은 옷 그대로 화장해라' 고 했다는데 좀 무섭다는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해를 바꾸고 이제 겨우 보름을 넘겼는데, 너무 돌연한 두 죽음 앞에서 '나의 유언'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
같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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