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옆구리

 

                                

                                                                 - 유홍준

  

 

  옆구리가 전부다

  물고기는

  비늘 뒤덮힌 옆구리로 살고 비늘 뒤덮힌 옆구리로 죽는다

  봐, 저 횟집 물고기들 죽어서도 제 옆구리를 먹인다

  맞아, 아내 몰래 가끔 만나던 그 여자랑

  생선구이 집에 가서 노릇노릇 옆구리 익힌 거 뜯어먹으며 생각했지

  연애란 네 옆구리 파 먹는 생각

  산다는 건 지금 누가 네 옆구리 쿡쿡 찌르는 거라는 생각

  어두운 밤길 가다가

  예고도 없이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향해 쑥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그것도 옆구리로 받아야지

  그래 그것도 괜찮겠어 번쩍번쩍

  빛나는 칼에 맞고 쓰러져

  물고기처럼 둥글고 슬픈 눈으로 너를 쳐다보는 것도

  119급차에 누워 내 삶의 옆구리로 피가 펑펑 빠져나가는 걸 느껴보는

것도

 

 

 

 

 

 

 

 

 

월간『현대시학』2010년 3월호

'시로 여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 2 - 권혁웅  (0) 2010.03.25
안동식혜 - 안도현  (0) 2010.03.23
너라는 소문 - 길상호  (0) 2010.03.22
중과부적 - 김사인  (0) 2010.03.16
사평역에서 - 곽재구  (0) 2010.03.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