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 이야기
1996. 7. 26
RULE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상당히 복잡하게 정의가 되어있다. 그 중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있는 것이다 싶은 정의가 또 굉장히 길게 되어 있다. WEBSTER에 의하면
An authoritative direction for conduct, ESP. one of the regulations governing procedure in a legislative body or a regulation observed by the players in a game, sport, or compe-tition. 이라고 되어있다. 모자라는 해석이지만 game이나 sport에서 선수를 규율하는 규칙을 의미한다는 뜻이 되겠다.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대한민국은 당초 종합 7위를 목표로 했다가 쿠바와 스페인의 전력이 예년 같지 않음에 따라 종합 5위로 목표를 수정했다 하는데 많은 장면 ‘대한국민 만세’가 금과 함께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남과 겨루기 대목에서 RULE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 즉 조건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승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접어준다’는 말을 사용한다. 기량의 차이가 현격한 상대와 불가불 겨루기를 해야 할 장면이 되면 상수(上手)가 하수(下手)에게 일정 수준의 형평 유지를 위한 불리 조건을 감수하게 한다는 것이 그것인데, 내기 골프의 핸디가 그것이고 바둑의 접기가 그렇고, 남녀 성 대결 테니스의 페널티 조항이 그것이며, 팔씨름의 팔목잡기가 그것이다. 그런데 접기가 없는 처절한 겨룸터가 고스톱의 경우인데 여기서도 또한 대단히 복잡한 RULE이 적용되며, 선수(?)들은 어떠한 형태의 게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RULE이 상당히 큰 폭으로 바뀐다.
이른바 게임의 형태란 전두환 고돌이, 노태우 고돌이, 김영삼 고돌이, 이주일 고돌이 등이 있고, 계보에 잘 끼지는 않지만 최 면장 고돌이도 있다고 한다. 이 게임의 RULE은 상당히 시사(時事)에 민감해서 삼풍백화점 참사가 있었던 작년 한 해 동안은 ‘삼풍 고돌이’가 전국 고돌이 계를 강타했던 모양이다. 하여간 이들 고돌이 판에는 실력의 고하를 철저히 무시한다. 기본은 3점, 실력이 안 되면 돈으로 때우면 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돈으로 때우는 것을 낙 삼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시종 열 받아 판 끝나면 제 신발을 못 찾아 신는 사람도 간혹 있는 모양이다.
이 게임이 지니는 장점은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하고, 소도구가 간단하고 말 몇 마디에 Rule Meeting이 끝나기 때문에 하시라도 어느 장소에서든 판 벌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까지 한판 벌리고 있는 점잖은 분들이 간혹 신문에 보도될 정도니까...
진짜로 서글픈 장면은 그 다음이다. 한판 어울리다 보면 아무래도 경험이 많고 판세를 잘 읽는 사람이 끝내 소득에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운이 7이요, 기술이 3’ 이라는 고스톱 논리도 노련미가 가세한 ‘운7 기3’에는 밀리기 마련인가 보다.
마치 남의 패를 읽고 나 있듯이 “어이 똥 내 똥”하고 말해 버리면 오광 알짜 들고 앉아서도 광박 쓰는 예가 왕왕 있게 된다. RULE 더러워서 ‘독박’도 면해야겠고, ‘피박’도 면해야겠고, 눈물겹지만 똥광 삼광 포기하고 막판에 똥쌍피까지 버리고 난 허탈감이야 잃은 돈의 아까움에 비길까?
최근 우리나라 경제실태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이 고스톱 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란 나라-일찌감치 광 팔아 놓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남의 패 들여다보면서 느물느물 웃고 앉았고, 얼마 전 잃었던 돈 ‘이제는 만회해야지’하는 미국은 흔들고 백리를 뛰었는데 알광 들고 앉아있는 일본은 미국이 얼른 피 붙여먹고 ‘고’ 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속 모르는 분단민족 북한에서는 얇아져 가는 주머니 사정도 모르고 자꾸만 개평 달라고 떼를 쓰고 앉았으니, 작전도 없이 뒤 패 붙기만 기다리는 속이 갑갑하기만 하다. 정말로 속없는 사람들, 여의도에 모여서 ‘감 놔라, 배 놔라’ 참견만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 조차 만만치가 않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우리 회사가 처한 양이 꼭 우리나라가 처한 고스톱 판의 그 모양을 닮았다. ‘고 임금, 저 생산성으로 가격 경쟁력 약화’, ‘주력 조선 산업의 부진’, ‘경쟁사 대비 인당 생산성 저하’,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들고 앉아 때를 기다려야 할 패를 자꾸만 내 놓으라고 하니 한 치 양보 없이 죄어오는 RULE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야박하기만 하다. ‘차라리 광이나 팔고 말걸 그랬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이연사(二連死) 금지법’에 울며 겨자 먹기로 패를 들고 앉아 있기는 하다만, 시의 적절한 훈수로 돈을 따게는 못하더라도 피박만이라도 면하도록 응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이번 판 홀딱 벗고, 다음 판을 기다리란다’
RULE만 아니면, 체면만 아니면, 화투판 걷어버리고 소리라도 한번 지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