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위안(慰安)

 

1994. 10. 18

 

좋은 말도 많이 있다.

중후함이라든가, 중년의 멋이라든가.

 

낮술의 특징은 아무래도 안면의 붉어짐을 촉진하는 듯 하다.

빛이 있어서 일지, 체질적으로 밤낮의 차이를 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세상에 멋대가리 없는 것이 있다면 본질의 속성을 아닌 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을을 꽤나 타는 사람이 가을을 맞아 의연한 것도 폼나는 것이 아니다.

훌쩍 떠나가 버리고픈 밤, 쩔거덕이며 밤 기차에 몸을 싣고 세상의 연을 잠시 떨칠 수 있는 것도 멋이면 멋이겠다.

낯선 간이역에서 또 서로 묻고픈 말이 없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면서...

 

사후의 일들을 시시콜콜 따지는 것도 독립을 염려하며 시국을 논하던 막 어른되던 시절의 젊음과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는(어쩌면 나는) 기개(氣槪) 운운하는 속물이 아닌가?

 

탄력이 없어지는 주름은 중후함인가? 중년의 멋인가?

지각없이 노 없는 배처럼 까닥이는 것은 철없음인가? 노망의 전조인가?

세태의 변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노화도 촉진되는 것이나 아닐지.

 

오늘 모 일간지의 X세대에 대한 개탄이 서글프다.

약간의 추위가 느껴지는 아침나절 종종걸음 치는 아이들이 안스러운건,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어른이었던 때문일까?

아직 시절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지 않는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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