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災殃)

1996. 9.11

‘천변지이(天變地異) 따위로 말미암은 불행한 변고’를 일컬어 재앙(災殃)이라고 한다. 천변지이는 또 ‘하늘과 땅, 곧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큰 변고’라고 풀이하고 있다. ‘자연현상으로 일어나는 재앙이나 괴변’ 이라고 풀이되는 ‘천재지변(天災地變)’과 유사하게 쓰이는 말 인듯하다. 그런데 말의 속뜻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천변지이’는 어떤 원인에 의한 필연적인 인과(因果)가 얽힌 듯한 반면, ‘천재지변’은 그야말로 자연현상의 돌발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쨌든 몇몇 기록에 의한(대부분이 聖書에 근거함) 재앙의 모습은 다분히 인간생활의 모습에 깊이 기인한다. 즉 잘못되어져 가는 인간생활의 모습들에 대한 징벌들이 재앙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재앙의 모습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제일 큰 특징은 절대자의 인내를 시험하는 인간들의 교만함이 그것이고, 그 다음은 재앙의 징조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성서에 기록된 어떤 재앙의 장면에서도 미리 예고하지 않은 재앙은 없었고, 또 성서에 기록된 어떤 재앙도 피해나간 기록이 없다.

스케일이 큰 대작(大作) 영화로 유명한 찰톤 헤스톤 주연의 십계(十戒)란 영화가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율 부린너가 이집트의 파라오(이집트의 왕:람세스)로 분하여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로 분한 찰톤 헤스톤의 상대역을 맡았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자기의 민족을 구해내기 까지는 파라오와 숙명의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파라오의 강한 군대에 대항하기 위한 모세의 무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10가지 재앙의 무기였다. 온 백성의 몸에 이가 들끓게도 하고, 엄청난 파리 떼가 질병을 확산시키고, 물이란 물은 모두 피로 변하게도 하고, 메뚜기를 동원하여 온 나라의 작물을 상하게 하기도 하다가, 급기야는 이집트라는 나라의 모든 동물이 나은 첫 수컷은 모두 죽게 하는 재앙에 이르러서야 파라오는 굴복을 한다. 죽은 아들을 놓고 처절하게 울던 파라오가 놓아 준 이스라엘 백성을 잡기는 이미 늦어진 시점, 죽은 아들은 다시 살아오지를 못했다. 애초 재앙이 그렇게 큰 피해로까지 이어질 줄 몰랐던 파라오의 회한의 눈물은 때늦은 후회였다.

모든 일이 잘 못 진행되어 가는 양을 보면 당연히 잘못된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많은 전조(前兆)들이 보이게 마련이다. 일시에 모든 것이 급전락하기 위한 전제들이 쌓이고 쌓여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소위 lameduck이란 것도 권력의 말기 증상으로서 권력누수 현상으로 이미 공식적으로 용어화 되어 사용되고 있다. 사실 필요도 없는 단어일 수가 있지만 무리한 권력욕과 함께 시기를 틈타는 인간의 심리가 함께 편승하여 생긴 용어가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질서기반 위에서라면 말기라고 해서 누수현상이 생길 까닭이 없다. 재앙은 반드시 원인을 수반한다. 원인은 증상으로 나타난다. 증상은 치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적으로 확산된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가 들끓을 때 파리를 예견했어야 했다. 피가 온 나라를 덮을 때 망국을 예견했어야 했다.

요즘 우리회사의 여러 곳에 눈에 띄지 않는 파리군단들이 많은 모양이다. 파리가 먹성이 좋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지만 일단 파리가 날아 앉아 오래 머물렀던 음식은 여기저기 파리 알이 들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상한 음식은 버려야하고, 전체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결을 위한 노력이 별도로 필요하다. 이도 들끓고 있는 것이 여러 군데서 보인다.

근본적으로 이는 동물에 기생하는 곤충이다. 피를 빠는 동물이다.

얼마 전 영국 전역에서 이가 발생되어서 심각하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는데 이라는 동물은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가면 소멸되는 동물인줄 알았더니 딱이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이라는 동물은 故 닉슨 대통령의 재임시절 ‘일본은 이 같은 존재’라고 해서 미국경제에 빌붙어 산다는 강한 핀잔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직에 파리 같은 사람들이 끓게되면 상해 가는 조짐이다. 조직에 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면 온 몸이 근지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근지러움이 오래가게 되면 만성적으로 체질화된다는 것이다.

상해가는 먹이가 있는 곳에 아무리 철저하게 방역을 한다고 해도 원천적으로 몰려드는 파리를 막을 재간이 없다. 이 라는 놈이 서케(이의 알)를 슬기 시작하면 방충제로도 완전히 구제가 되지 않는다.

“곳곳이 썩고 새고 있다.” 는 감사팀의 탄식이 남의 말이 아니다. 한켠에서 위기공유를 외치고 살길 찾기를 외쳐본 들 근본적으로 새는 현상들이 없어지지 않아서야 공허한 외침이다.

얼마 전 그룹회장의 특별지시 사항이 시달되었다. 장기저축 수준을 높여 나가는 것을 통해 외화의존도를 낮추고, 철저한 경비절감과 함께 더 열심히 일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결코 극복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어려움 극복을 위한 솔선참여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위기상황이 아직도 나의 위기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전히 회사가 풍부한 먹을거리로 인식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외압에 의해 쫒겨남을 당하기 전에 조용히 그리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떠날 일이다.

끝내 오늘의 상황이 내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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