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差異)

1996. 7. 18

학원 폭력을 근절하라는 대통령의 특명도 별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연일 여중생의 출산과 성추행을 고발하고 죽음을 택했던 초등학생의 자살소동이 지면을 덮더니 오늘은 학원 폭력 사태가 ‘무서운 고교생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철학 부재의 세상에 가치부재의 행동들로 나타나는 이 시대의 단면이 노출되는 현상적인 문제를 치유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망가져 가는 자연 속에서 떠오르는 붕어 떼처럼, 생태계의 파괴는 죽음이 이르기 전에 어떤 류의 것이든 일단의 부작용을 선결시킬 터이다.

성도덕의 문란함과 폭력조직의 난무 등도 그 부작용의 일례는 아닐는지...

3년 전인가 일본에서는 통상압력을 견디지 못해 미국 상품을 대거 수입해서 백화점 등에서 판매했던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자국제품의 우수성을 믿는 일본 소비자의 외면으로 코 큰 사람들의 공갈이 머쓱해지게 되었지만.

우리나라가 29번째로 OECD 가입국가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도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되는구나 하는 자족의 노래보다는 “어쩌려구...”하는 우려의 소리가 더 높은 까닭은 못갖춘 마디의 한편이 아리기 때문이다.

선택과 적응의 문제가 이원화된 별개의 것이 아닐진대 오늘날 커져버린 갭의 높이가 절망스럽다. 대통령의 특명이 일선 경관들의 근무지침으로 전달될 때까지는 몇 단계의 지시를 거칠 것이며, 막상 몸으로 실행에 옮겨야하는 경관들의 마음속에 와 닿는 대통령의 의지는 얼마만큼 작아질까?

외제 선호와 과소비를 추방하자며 ‘외제담배 수입 10억불’, ‘수입양주 10억불’, ‘골프용품, 호화 건축자재 15억불’ 이라고 쓴 모형제품을 화형 시키는 행위들이 정작 그러한 상품의 소비자들에겐 어떠한 절박감으로 와 닿을까? 이를테면 외제수입차의 번호판을 구별하지 말도록 종용하던 양심가(?)들의 심경엔...

외국상품을 외면하던 일본인의 자긍심과, 심각한 현실을 화형 시키는 깨어있는 양심들의 외로운 함성이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만큼이나 큰 무게의 차이로 느껴진다.

사람의 절박한 고민이 가슴으로 납득되지 못하고 지적수준에서 이해되는 현상적인 문제가 학원폭력이 없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심경이 일선 경관의 발끝에 못 미치는 것만큼이나 황소걸음에 세월을 맡긴 듯한 의연함이 여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오늘이다.

“흩어지면 죽는다”고 확성기를 타고 나오는 노동운동가가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우리의 함성이 되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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