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주욱 기억해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을 일기라고 하지요.
그런 기록이 아니고 하루 중 특정한 시간대에 국한된 일기는 반쪽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 적어서 반의 반쪽 일기여야 하겠습니다.
어젠 퇴근 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정 있는 후배가 초청을 해 주어서 기왕에 면식있는 반가운 얼굴도 보고, 이 세월 같은 직장에 있었으면서도 피차 모르고 살았던 사람도 만났지요. 사람에 따라 좋다고도 혹은 그렇지 않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스크린 골프를 통해 꽤 오랜 시간을 이방 저방 넘나들면서 기량 겨룸을 했습니다. 그러 그렇게 게임을 마치고 나서야 일행 중 총무를 맡은 친구가 생일이란 걸 알았지요.
대표격으로 몇 사람이 축하를 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기왕 축하를 할 양이었으면 스크린 골프를 일찍 마쳐야 했어요. 어젠 그러지를 못했지요.
사실 총무는 팔꿈치가 아프다고 골프도 치지 않으면서 방마다 음료수네 음식이네 배달하느라고 바빴습니다.
듣자니 ‘영총-영원한 총무’ 이라고 해서 영구직 총무인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그도 팔자긴 하고, 확실하게 임기 보장되는 일이니 복 받았지요?
집에 들어 온 시간이야 당연 늦었지요.
일기의 마무리는 꼭 반성과 성찰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반쪽일기지만 격식은 갖추어야 할 것 같아서요…,
푼수 없지만 전 장가를 잘 갔거나 아내를 잘 만났거나 애 엄마가 착하거나 뭐 그 중에 하날 겁니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당하고 삽니다만 그거야 그때 그때 잊고 살아야지요.
별 잔소리 없이 얼른 양치질하고 – 빨리 양치질하면 잔소리가 확 줍니다. 나만 그런가?
하여튼 그렇게 잘 잔 것 같은데. 아침 사정은 좀 달랐습니다.
밥은 꼭 챙겨 먹여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인지라 반 눈 감고도 아침은 챙겨 먹고 나오지요.
문젠 그 밥상머리가 전날 일기의 반의 반은 쓰게 하는 자립니다.
오늘 반의 반쪽 일기도 그렇게 이루어진 일기이고, 반성거리 일깁니다.
“당신은 좋은 의미로 시간을 잘 보내고 와서는 왜 ‘씨’자 ‘발’자를 연발하면서 누군지 모를 대상을 탓 하는데요?”
그랬던 모양입니다.
친구들 후배들 만난 자리가 더 없이 좋은 자리였고, 웃고 즐길 수 있었던 자리였음에도, 완벽한 감정적 알리바이를 위해서는 불특정한 누군가가 ‘씨’와 ‘발’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던 모양입니다.
각성(覺醒)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오늘 굳이 반쪽일기라는 제목을 빌려 못난 내 주장을 옮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처럼 ‘선배 노릇 한번 했다’는 기억이 남을 어제 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해 달력이 어느덧 반쯤 넘어갔습니다.
한 일없이 반년을 보냈구나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은, 작년 11월말 멀리한 담배를 아직 입에 대지 않고 꽤 긴 기간을 버텨왔구나 하는 대견함이 뒤를 받쳐주는 그런 세월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매주 뻐근하게 일하고 내려오는 제 농장에서는 고추대가 실하게 올라오고 감자는 곧 소출을 기다리는 그런 절기이기도 합니다.
뻐꾸기가 울어서 진짜 여름임을 실감하는 산속 농장에서는 말이지요.
어울리지 않는 반쪽 일기였습니다.
좋은 자리 끝에 집에 들어가서는 절대 ‘씨’자 ‘발’자를 연발하지 않고 ‘꼭 양치질 하고 자야겠다.’는 반성으로 끝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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