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

 

 

                                                                           - 김선태

 

 


  우리 집 뒤뜰에 핀 찔레꽃처럼 괜시리 마음이 애지고 막막해지는 계

집아이가 우리 반에 있었는데,


  마주치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지레 먼 논둑길을 도망치다 자꾸

만 넘어지곤 했는데,


  그런 날은 아니 그 다음 날은 무슨 죄나 지은 듯이 아예 학교도 작파

한 채 산에서 놀다 기신기신 집으로 기어들곤 했는데,


  열 살쯤이던가, 촛불을 들고 칠흑 같은 벽장 속에 들어가 종일토록 연

필에 침을 묻혀 쓴 편지로나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인데,


  무슨 세상에나 가장 어려운 말이라도 적혀 있었던지 졸업가를 부르는

순간까지도 건네지 못하고 손떼만 잔뜩 묻은 걸 도로 벽장 깊숙이 감춰

버렸던 것인데,


  지천명에 이른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온통 마음이 환해지는 것이어서,

연어처럼 남몰래 지나온 세월을 거슬러 오르고 싶기도 한 것이어서,

 

 

 

 

 

 

 

 


계간 『열린시학』 2010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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