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물을 거스르지 못함이 아쉬움이 아니다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도한 장강의 흐름'과 함께 유비라는 사람의 출현을 기억할 것이다. 도원 결의한 삼 형제가 차례로 죽으면서 삼국지의 극적인 요소나 소설적인 재미는 훨씬 반감하지만, 전대의 인물에 비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후대의 인물들에 의해 삼국통일의 대업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전대 인물과 후대 인물의 비교가 큰 의미는 없겠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삼국지를 처음 보면서 유비와 공명의 죽음 이후 급격히 쇠락하는 ‘촉’의 멸망사와 함께 ‘유선’의 인물 됨에 크게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한국 기업순위의 변동사를 보아도 한 세대를 훌륭하게 넘기고 살아 남은 회사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삼대 가는 부자 없다”는 우리네 속담은 다분히 경험적인 것인 모양이다.
오늘 날 현대를 비롯 삼성, 선경, LG 등 대표적인 기업들이 2세 경영체제에 돌입을 했고, 부분적으로 3세 경영체제로 전환이 되고 있는 중에 벌써 상당한 진통들을 겪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완전 분리가 되지 않은 한국 기업의 경영사를 볼 때 이러한 진통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관심 속에 진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상속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2세 경영에서 3세 경영으로 진행이 되면서 선대의 업적에 웃도는 실적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첫째, 창업자의 초기 낭만이 빛 바래서 일 수가 있다. 창업 초기에는 사업을 일구어 가는 그 일자체가 즐거움이고, 그 일을 통한 국가적 기여에 크게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또 전통적인 가족관 측면에서 장자의 효 같은 것도 한 몫을 했음직하다. 家를 일구고 지켜야 했던 까닭이다. 이젠 그런 낭만은 더 이상 기업 경영에 고개를 디밀 틈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그건 경쟁우위, 열위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다.
둘째, 선대로부터 잘 교육받은 경영자들의 퇴진에 따른 경영공백이다. 굳이 溫故知新을 들먹이지 않아도 과거에서 배워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는 필요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은 유행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 술은 가스가 많이 발생하니 아직은 농익은 술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는 경계의 경구는 혹시 아닐까? 구색을 맞추어 잘 익은 술을 제대로 공급하려면 헌 부대에 있는 술 일수록 고유한 향과 맛을 낼 수 있겠고,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지금은 새 부대에 담긴 술이 헌 부대에 담긴 술로 될 때 손님 상에 내 놓을 만한 술이 될 것 아닌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기업 경영에 관한 한 맥맥히 전통을 이어가면서 브랜드 네임을 지속하는 것을 보면, 새 술과 헌 술의 조화로움이 사회적 질서로 깔려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또 한 사람의 퇴임을 보면서, 급격한 세대 교체의 공백을 우려하는 것은 그저 기우일까?
2008. 12. 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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