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생각

1996. 10. 14

이제 한국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신문만화 블론디는 오래 전부터 한국일보에 실린 대표적인 외국만화다. 주요 등장인물은 대그우드라는 가장과 그의 부인 블론디, 딸과 아들 그리고 개 한 마리와 콧수염에 안경을 낀 대그우드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 친구등 비교적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문화적인 풍토가 다른 외국의 상황이라 간혹 의미전달이 불명확한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 사는 모양은 한결같은지 때로는 씁쓸한 웃음을,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잘 전달해 준다. 얼마전 이 만화의 줄거리. 주인공 대그우드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중얼거리고 있다. “왜 계단이 삐걱거릴까? 연구해 봐야겠어.” 아래층에 있던 블론디가 외친다.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계단이 왜 삐걱거리는지 연구중이야.” 블론디가 혼자 중얼거린다. “대체 뭘 연구하고 있다는 거야?”

예전 국민학교 교과서에 ‘지나친 생각’이라는 제목의 짧은 이야기가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새는 어느 집의 이야기다. 비 내리는 어느 날 아버지는 비가 새지 않는 부분에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나온다)은 대접에 세숫대야에 물 받을 그릇들을 받치면서 아버지에게 소리친다. “아버지 천장에서 비가 많이 새요.” 아버지가 대답한다. “글쎄 나도 그걸 생각 중이란다. 왜 비가 샐까?”

‘순수 이성 비판’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칸트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했더라도 꽤나 늦은 결혼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 일화가 있어서 그런 생각을 뒷받침 해준다. 그가 어떤 여성으로부터 구혼을 받았다. 그 후 철학자답게 여러 가지로 조건을 비교하고 검토한 끝에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는데, 그 때 그 여자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더라고...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할 일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실제적인 병리현상으로 두통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 때도 사람들은 ‘골치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생각의 타래가 얽히고 섥혀서 진짜로 골치 아픈 현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신중하게 모든 사물을 보고 철저하게 분석된 현상을 배경으로 해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보통 ‘사려 깊다’는 표현을 한다. 그것이 나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 너무 깊은 사려로 인해 조치의 기회를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것이 지나친 생각이다.

최근 비효율과 낭비를 없애보자는 전사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이 우리회사에 비효율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더냐 하는 것을 깊이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려서 해결 될 상황이 아니라는 급박함을 함께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그저 지나치던 안일함에서 깨어보라는 것이다.

또 작은 것을 모아서라도 최선을 향한 기반을 만들어 보라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닐 수도 있다. 근본을 따질라치면 좀더 크고 상징적인 그런 현상들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 완전한 모양을 다 규명해 내기 위한 지나친 생각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계단이 삐걱거리면 일단 못을 쳐서 고정을 해야한다. 지붕에서 비가 새면 지붕으로 올라가서 새는 부위에 비닐이라도 덮어야 한다.

어쩌면 칸트처럼 지나친 이성이 현실의 무정함으로 인해 내 몰릴지 모른다.

이럴 때가 아니다. 우리 함께 다시 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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