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그리고 ‘사랑’을 남기고 떠난 사진작가 최민식

 

 

레이디경향 | 입력2013.04.05 16:55

 

 

기사 내용

 

 

큰 별 하나가 졌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최민식 사진작가가 지난 2 12일 향년 85세로 영면했다. 1957년 카메라를 잡은 이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삶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온 그는 언제나 빛과 어둠 속 인간의 얼굴에 앵글을 맞춰왔다. 평생을 관통한 주제가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는 특히 가난한 이들, 소외된 자들의 아프고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며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고발해왔다. 휴머니즘의 길 위에서 일생을 바쳐온 고독한 사진작가 최민식, 그가 남긴 흑백사진 몇 장을 통해 이제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을 그를 떠올려보고자 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평생을 바친 영원한 주제 '인간'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1세대를 대표하는 사진가로 손꼽히는 최민식 작가는 1957년 사진에 입문한 후 건강이 나빠지기 전인 지난해 늦가을까지도 국내외를 누비며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미로처럼 골목이 들어선 마을 동네, 숨 쉴 틈도 없이 빽빽하게 집들이 들어선 판자촌, 사람들로 정신없이 붐비는 시내, 난전이 성행하는 시장, 곳곳에 피곤이 묻어 있는 열차의 한가운데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또 그는 거리 곳곳에 새겨진 한국전쟁과 근대화의 흔적들에도 초점을 맞춰왔다. 최민식 작가의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저마다 한두 마디 말이나 한두 줄의 글로는 결코 표현해낼 수 없는 거대하고 숭고한 세계가 깃들어 있다.
최민식 작가는 '빈민의 사진가' 혹은 '가난의 얼굴을 찍는 예술가'로 불린다. 평생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민중의 남루한 일상에 대한 천착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주름진 얼굴에 고단한 삶을 새겨 넣은 노인, 어린 동생을 돌보는 앳된 얼굴의 소녀, 한쪽 다리를 잃고서도 신문을 배달하는 청년, 계단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는 남자, 뒷짐을 진 채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 너절한 시장 바닥에 앉아 생선을 팔고 있는 상인…. 그리고 이 모든 장면들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람들의 미소와 표정이 살아 있는 사진들이 그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사회 저변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순간 포착한 그의 사진들은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직관적으로 투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록된 사진을 바탕으로 인권의 존엄성을 호소하고 권력의 부정을 고발하고자 했던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민중의 삶과 사회문제를 의식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난 50여 년간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시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 돈이 되는 사진을 찍으라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항시 그런 질문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진은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일대기적 사고(思考)라 할 수 있으며, 사진가란 자기가 묘사하는 것의 의미를 해석해내는 사람이다. 나는 어두운 시대에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즉 무엇이 휴머니즘이며, 무엇이 진정 인간을 위한 정의인가를 깨닫기 위해 고민했다. 나는 넓은 의미에서 모든 사진은 사회적이며, 따라서 현실을 철두철미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얼리즘 사진가로서 나는 그 어떤 것에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진실한 창작을 위한 자기 도전이 있을 뿐, 후미진 곳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인간이 머무는 곳은 어디라도 내 사진의 영역이 된다. 그곳은 가식적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사진은 볼 때마다 깊이를 느낄 수 있고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마음으로 고통에 처한 사람, 기도하는 사람, 우는 사람, 침묵 그리고 미소…, 이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아왔다. 나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만이 지닌 정신적 가치와 풍부함을 발견했으며, 그들을 통해 물질적 번영에만 의존하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려 했다.

나의 사진의 기조는 무엇보다 민중과 같이하는 삶에 있다. '우리 삶의 진실한 이야기'를 민중에게 전하려는 사명감과 당위성, 이것이 내 사진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으로 겪은 감정을 담아 포착해낸 민중의 얼굴
"감정 없이는 카메라를 들 수 없으며, 감정은 삶의 체험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던 최민식 작가. 그의 사진이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이 겪은 인생의 체험과 맞닿아 있다. 스스로를 "거지 작가"라 부르던 그는 왜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만 찍느냐는 물음에 대해 종종 "내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1928
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그는 소작농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지독한 가난과 함께 자랐다. 12세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몸도 성치 않았기에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고된 소작농 일을 해야 했고, 이후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을 나와 품팔이, 지게꾼, 공장 일, 자동차 기능 일, 막일꾼 등 그야말로 안 해본 일을 찾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그의 꿈은 화가였다. 6·25전쟁 참전 뒤 1955년 일본으로 밀항해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2년 동안 미술을 배우며 화가의 꿈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커다란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한 사진집 「인간 가족」을 발견하게 된 것. 인간의 출생, 성장, 사랑 등의 과정을 담은 이 사진집을 통해 사진가에 의해 포착된 삶의 핵심적 순간들이 사진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훨씬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민식 작가는 미술 공부를 포기하고 카메라를 잡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957년 가을, 중고 카메라 세 대와 수십 권의 사진집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와 부산의 한 자선회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후의 생활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상업적인 활동보다는 순수 사진 작업에만 몰두했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둡고 고단한 사람들을 렌즈에 담으며 이 땅에서 소외받는 가난한 이들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던 것이다.

 

나의 사진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험난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내 사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체험이 있었기에 일관되게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삶의 진실을 추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휴머니즘의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집이고 사람이고 늘 나는 가난한 편에 서왔다. 그래서 내 사진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감히 '낮은 데로 임한 사진'이라 말하고 싶다. 내 흑백사진 속에는 희로애락이 공존한다. 내 사진의 태반을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지울 수 없는 정겨운 얼굴들이다. 인간적 관심과 삶의 진실에 대한 추구는 나의 전 생애 사진 작업을 통틀어 일관된 것이었다. 나의 영원한 테마 '인간'은 그 자체로서 부분이자 종합된 하나의 세계이며 시대이고 사회사이자 인간사이다. 어떻게 내 의무를 다하면서 그들을 위해 사진을 계속해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평생 과제였다.

내가 택한 길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인간의 진실한 삶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화려한 성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대로의 삶,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촉매제인 고통에 시선을 못 박았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 속에서 한마디의 절규를 듣는다. 가난과 싸우면서 삶의 고난에 정면으로 부딪칠 때마다 내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바로 사진이었다.

진정한 사진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사색 그리고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은,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 것은 그 현실 자체에 이미 예술이 추구하는 진실이 담겨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 흑백사진 속 어둠에는 밝은 쪽으로 도약하려는 삶의 몸부림과 내적인 진통이 깔려 있다.

지난 세월은 분명 힘겨운 세월이었다. 하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가 있는 배려의 시간이었기에 지금은 행복하다. 그 세월의 자락 모두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가치 있는 한 장의 사진에는 한 시대와 사회를 일깨우는 힘이 있다. 작품은 인간이 중심이다. 인간의 현존을 포기할 수 없으며, 거기에는 예술과 삶이 만나 어우러져 있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사진가로서의 신념
시각적으로 세련된 예술 사진이나 형식주의 사진을 추구해온 한국사단에서 민중의 삶과 문제에 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휴머니즘으로 일관해온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사실 그는 최근까지도 '비주류'로 분류되는 작가였다. 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지도, 정식으로 누군가에게 사진을 배운 것도 아닌데다 주요 활동 무대도 부산인 탓에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가난' '휴머니즘'에 대한 굳건한 고집 때문에 수많은 불이익과 박해를 겪기도 했다. 서민들의 궁핍한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적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정보부에도 수차례 불려가야 했다. 오히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았다.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 처음으로 2점이 입선된 후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20여 개국의 권위 있는 사진 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상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고 각국에서 열린 사진 전시회에서는 극찬을 얻으며 전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자신이 찍는 사진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믿음이 있었던 최민식 작가는 노환으로 몸져눕기 전까지 '영원한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까지도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50년 넘는 사진의 소재가 됐던 부산 자갈치시장을 비롯해 인근 시장과 마을, 경남 지역 곳곳을 다니며 셔터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진 발표의 수단으로 주로 전시보다는 사진집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이는 하나의 주제를 차분히 검토하는 시간과 그것을 충분하게 묘사하는 공간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진가의 안력(眼力)과 지력(智力) 그리고 감수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사진집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던 그는 1968년 사진집 「인간(휴먼)」 제1집을 낸 이후 2010년 제14집까지 출간했다.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는 2013 15집을 낼 계획이며, 그 이후 낼 자료집도 박스에 모두 정리해뒀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시대적 기록물을 공유하며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사진가의 귀중한 소임이라 여긴 그는 지난 2008년에는 일반 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0만 장에 이르는 필름, 사진 작품, 사진집, 카메라 등의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기증하기도 했다. 또 대학 강단은 물론 각종 강연회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열심이었다.

인간은 모두 개별적인 존재이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함께 삶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사진가는 언제나 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최민식 작가. 그의 말대로 살아 있는 생명의 의미를 반영하지 못하는 사진은 아무리 완벽해도 가치가 없으며 예술과도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사진으로, 그리고 삶으로 직접 보여준 진실된 사진의 힘은 오늘 이 곳에서, 아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강력하게 작용하며 세상을 움직이고 감동을 전달할 것이라 믿는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창조해왔다. 남들의 눈보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꾸미거나 연출한 사진은 내겐 흥미가 없다. 나에게 카메라는 하나의 수단이며, 직관과 자발적 행동의 도구이자 시각적 언어로써 동시적으로 질문하고 결정하는 순간순간의 주인이다. 나는 항상 피사체와 나 자신에 대해 큰 경의를 품고서 사진을 찍어왔다. 나는 나의 사진 속에서 인간의 특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것들은 추하고도 아름다운 우리 시대에 대한 나의 진실되고 생생한 발언일 것이다.

나는 '인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 저변에 깔린 따뜻한 감정은 바로 '애정'이다. 나는 수많은 책과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집을 통해 끊임없이 사진을 배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그토록 사진에 몰두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사진 창작을 한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즐거움이며 행복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짜증이 날 겨를이 없었다.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늙을 새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지난 반세기 동안의 결과물인 사진집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의 사진집은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진짜 이야기는 '인간'의 사랑에 관한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진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사진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내 사진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참으로 극적인 순간에 운명이 우리를 사진 속에 함께하게 했다. 사진집이라는 위대한 공간에다 지극히 작은 '영상의 집'을 지었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 존재를 뼈저리게 의식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있었기에,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었기에 나의 카메라는 눈물을 삼키며 진실의 셔터를 눌러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삶의 무대에서 퇴장해 벌레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이다. 성공한 인생을 판단하는 기준은 직업적으로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행위이다.

*
최민식 작가의 이야기는 「휴먼 선집」과 작가 에세이에서 발췌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글모음 > 얘기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글 2편  (0) 2014.02.06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붙어있는 명문 30훈  (0) 2014.02.06
미우라 옹의 건강 관리법  (0) 2014.02.06
이상하다  (0) 2014.01.09
거긴 계절이 좋아지고 있지요?  (0) 2014.01.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