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70년대 수필을 보면 ‘~ 예찬’ 이란 수필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개된 것은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소개되었겠지만, ‘청춘예찬’ ‘신록예찬’ 이런 제목이 생각나고요.

이광수선생께서 산사에서 지내면서 쓴 수필도 그 비슷한 류의 예찬 수필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꼭 입증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게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굳이 제목을 다시 붙이자면 ‘파랑 예찬’ 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읽다 보니 두 자매가 옛날식 상품 진열대 앞에서 카셋트 테이프 녹음과 재상이 가능한 책상 형 라디오를 골라고 있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글쓴이의 성별은 남성아우가 찾아서 잘 안내를 다시 할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어서 감히 ‘자매’라고 정의 내립니다.

잘 아는 상사 분의 딸 아이가 머리가 엄청 좋아 공부를 참 잘했었어요. 당시 중학생이었지요.

아이는 엄청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었고, 그만큼 시험 등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류의 일에 대해서는 많이 긴장하는 성격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게 원인이 되었던 듯 평소 실력에 못 미치는 수능 성적으로 인해 ‘세상에서 평가 받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실패합니다.

재수를 본인이 원치 않았던 모양으로 아이는 그 대학에 갔고, 몇 년전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 소개가 길어졌는데, 그 아이 아빠가 불쑥 내밀면서 보라고 권했던 그 아이의 중학교 졸업반 시절에 교지(校誌)에 썼던 글이 생각납니다.

“가끔 하늘을 보자.” 아직 다 크지 못한 중 3 아이의 갑갑한 가슴이 – 어떤 연상도 괜찮습니다. – 외려 남자 어른의 가슴을 압박하는 기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바라 본 하늘은 아마 장마 끝난 가을 하늘 닮은 여름 하늘이었을 겁니다. 하늘 한 켠에 뭉게구름을 배치하고 온통 파랑 색의 여백으로 동양화의 기본에 충실한 구도를 잡았던…

‘미인 같은 파랑’ 이라는 오늘 소개 드리는 글 중에 문득 그 아이의 얼굴이 ‘파랑’ 이란 단어에 오버랩 되어 지나갑니다.

아직 중학생의 여린 얼굴로… 

미인 같은 파랑


오래 전, 빨강색 라디오와 파랑 색 라디오 두 대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맘에 드느냐고 누가 물었습니다.
둘 다 예뻐서 고민하다가, 빨강색의 라디오가 좋다고 했습니다.
옆에 섰던 여동생은 대뜸 파랑이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동생의 말에 반색하며
'
뭘 좀 아네. 나하고 색깔 취향이 같아. 파랑은 도도한 미인 같은 색이야.'
하였지요.
도도한 미인 같다는 말이 참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유심히 파랑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짙은 파랑은 저 먼 지중해의 바다색처럼 신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스는 국기도 그렇고, 바닷가의 집도 그렇고
흰색과 파랑의 조화입니다.
그 집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당장 그곳으로 배낭을 꾸려서 떠나고 싶어집니다.
요즘은 파랑 옷, 파랑 가방, 파랑 신발 등
눈을 끄는 패션이 시원합니다.
도도한 미인, 쌩 돌아서는 미인 같은 파랑.
그런 미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파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렙니다.
폭염과 장마에 지친 몸과 마음에
가뿐한 파랑이 깃든 휴가철이면 좋겠습니다.

-
최선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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