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써 보는 유언장
대구 관음사에 ‘죽음 연습장’이 있다. 입구에 있는 노트에 유언을 써놓고 안으로 들어가면 관이 기다린다. 관 안에 들어가 누우면 바깥에서 그대로 못을 박아버리는 데 웬만한 강심장도 깜짝 놀란다. 숨구멍도 뚫어 놓지 않았고 판자 틈 사이에서 빛이 살짝 들어올 뿐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들어가지만 일단 들어갔다 나오면 사람이 달라진다.
이렇게 죽는 법을 배우면 옳게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훌륭하게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다.
그러나 아무도 죽음을 원치 않는다. 천국이나 극락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지금 당장 죽어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천국이나 극락을 가면서 무엇을 가져갈까? 따라와 줄 사람이 있을까?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는가? 가져갈 수 없는 건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사용하고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작가 겸 방송인 최윤희씨가 부부 동반 자살을 택했다. 그의 유서엔 “저는 700가지의 고통에 통증이 심해 견딜 수 없었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라며 함께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유언장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한 준비이고 지나온 삶을 반성하는 기회이며 사후 가족 화합을 위한 안전판이다. 우리는 사망자 가운데 유언장을 남기고 가는 경우가 고작 2~5%에 불과하다.
고고미술학자 김원룡은 72세에 작고했지만 40대에 유언장을 써 연구실 캐비닛에 보관했다. 거기에 ‘내가 죽으면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즉각 관에 넣어 곡성 울리지 말고 화장하라’는 유언이 적혀 있었다.
‘유언장 닷컴’을 운영하던 이성희씨는 97년 회사가 부도나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무작정 자유로를 시속 180km로 달렸다. ‘오른쪽으로 손목을 조금만 틀면 고통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캐비닛에 보관한 유언장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고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얘들아, 너희들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기억 됐으면 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리 써놓은 유언장이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소설가 한말숙씨는 유언장에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 된다”고 남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얼마 전 자살한 ‘행복 전도사’ 최윤희씨도 “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남편에 대한 사랑의 유서를 남겼다.
40대 직장 남성을 대상으로 아내에게 가장 남기고 싶은 유언을 물었더니 1위가 ‘미안하다’, 2위가 ‘사랑한다’로 응답했고 ‘재혼하라’가 ‘재혼하지 말라’ 보다 배 이상 많았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삶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제일 아름답다. 행복전도사가 행복을 전하는 데 전력투구 하다가, 배우가 무대에서 심혈을 쏟아 연기 하다가, 교수가 강단에서 강의하다가 쓰러진다면,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다 무대 위에서 죽는다면 그 이상 아름다운 일이 있겠는가!
끝까지 자기의 길을 걷는 것, 자기의 일에 매진하는 것, 그리고 거기가 자기의 죽을 자리가 되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마지막 죽음의 영수증이 날아오기 전에 죽을 자리가 어디인지 제대로 알고 삶의 불꽃을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피워 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훌륭한 유언장을 미리 써보자. 어떤 내용으로 적을까? 무엇을 남길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윤정문 울산지검 검찰시민 옴부즈만
며칠전 울산 경상일보에 윤정문씨란 분이 기고한 글입니다. 글이 짜임새있고 내용이 좋아 통화라도 한번 하려고 번호를 돌렸는데 연결이 잘 안되더군요. 주말에 어두운 내용이라 그렇지만 가장 어두운 곳을 보고 있으면 나머지가 모두 밝아 보이는 법이지요.
좋은 주말, 휴식의 휴일 되시고 늘 건강하십시오.
이수목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