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방/나루의 방

이순신을 생각하며

날우 2022. 4. 29. 16:59

오래전에 '칼의 노래'를 일독 할 것을 권했던 적이 있었어요.

대통령이 봤던 책이라서가 아니고, 한 시대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사람이 당 시대를 겪었던 인간적인 고뇌를 같이 이해하자는 차원에서 말이죠.

 

 요즘 KBS 에 '불멸의 이순신'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이 되고 있드만요.

'무인시대' 종영 후 후속 방영되는 프로그램인가 봅니다.

 

 첫 회부터 보지는 못했고, 우연히 재방송을 보다가 거의 종영단계에서부터 보게되었네요.

약간 여린듯한 캐릭터의 탈렌트가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았던데, 아마 강직한 인상보다는 순간순간을 홀로 판단하면서 전쟁보다 더 지독하게 다가오는 외로움과의 투쟁을 잘 표현하기 위한 설정이 아닌가 하네요.

 

 어제 방영된 내용은 이순신 장군의 최후 대첩인 '노량대첩'의 순간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갑옷을 벗어 순직한 장수에게 덧입혀주고는 적탄에 맞아 자리를 비운 고수(鼓手)를 대신해서 독전(督戰)하는 장면에 왜군이 장군을 향해 조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끝이 나거든요. 드라마를 더 끌어 갈 심산이 아니라면 다음주 분에는 이순신 장군이 적탄을 맞겠지요. 그리곤 목을 타고 넘어오는 선혈을 억지로 참으면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올거구요.

 

 이순신이라고 하는 영웅의 존재는 그렇게 외롭게 탄생이 됩니다.

전쟁의 와중에도 조정의 암투는 전쟁보다 심각하게 임금을 중심으로 피나게 전개가 되고 있었고, 그 순간 순간 이순신 장군은 왜병과 검을 겨누고 독전하는 장면보다는 오히려 조정의 온갖 제재를 몸으로 맞으면서 '난중일기'를 썼던 겁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사실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승리를 위한 작전에 골몰해서보다는 조정의 돌아가는 형상과 함께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적. 왜를 향한 증오가 복잡하게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던겁니다. 그 때 들려오는 잔잔한 피리소리가 애를 끓게 할 수 밖에요. 모든걸 때려치우고 전쟁을 종료한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 개인의 영달에 지장을 줄 일은 없었던 겁니다.

 

 기록엔 아마 이순신 장군이 여러번 울었다는 대목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선조가 울었다는 전갈에 북향 3배를 하면서 울고, 선조가 몽진을 떠났다는 전갈에 또 북을 향해 울고,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황 중에 양곡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군졸들이 굶고 있을 때 스스로는 장군이랍시고, 멀건국에 보리밥을 우겨넣으면서 또 웁니다.

눈물 많은 장군 이순신의 단호한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은 극적입니다.

 

 "나라에서 나를 역도로 몬다면, 난 기꺼이 역도가 되겠소이다. 나의 죄과를 물을 양이면, 왜군을 섬멸한 연후에 물을 것이며, 모든 죄는 나 혼자 받겠소이다." 조정을 대표해서 전장에 내려 온 대신에게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그리곤 전군을 향해 명합니다. "공격 준비를 하라. 왜군을 한 놈도 남겨보내지 말라."

 

 그리고 그날 저녁 참모들을 소집해서 작전을 지시하고는 말합니다.

" 이 바다에서 죽어간 원혼들은 이 바다에 저 왜구들의 피를 뿌려 한을 씻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 바다는 또 내 피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죽음을 예고하고 나간 전장, 그의 마지막 전장이 노량입니다.

 

 역사는 후일 알아서 그 크기가 가늠이 되는 거구요.

정, 야사를 털어 당시의 판단이 누가 옳았는지가 가려지는거지요.

인위적인 해석을 덧붙여 이렇다 저렇다 해도 당시의 고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겁니다.

 

 선조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대의 유성룡, 이순신 과연 충신이로고..."

그러면서 어떤 결정을 합니까?

이순신을 잡아올리라고 의금부 동원령을 내린 연후에 급히 대궐로 달려와 철회를 요구하는 당시 영의정 유성룡의 간언을 뿌리칩니다.

그리곤 명하지요. "영의정의 관직을 삭탈하라."

 

 친일의 역사를 밝혀내자는 논쟁이 한창인 요즘입니다.

누구라서 누구를 단죄할 것이며, 진정한 역사의 소리를 한 줌 왜곡없이 정리해서 시대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지요?

 

 이 시대 누군가는 또 조총에 맞아 신음하면서 "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는 장군들이 있어야 할 모양입니다.

글쎄요 역사는 단절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요.

어느 가수가 - 대학생 가순가요? - '역사는 흐른다' 고 긴 소절의 노랠 부르고 있던데...

역사 가운데 명멸한 수 많은 인물들이 거명되면서 말입니다.

 

 이 참에 소급, 소급을 해서 말이죠.

왕정을 근본적으로 무력화했던 정씨일가에 대한 심판, 이씨일가에 대한 심판, 최씨 일가에 대한 심판도 아울러해 버리면 어떨라나요?

왕조를 뒤엎은 이씨일가에 대한 심판도 빠질 수가 없겠지요.

 

그렬려니 외세를 동원해서 억지로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생략할 수가 없겠어요. 그 보다 더 오래 전 우리 국토를 중국영토 깊숙히 확장했던 광개토대왕은 엄벌에 처해야죠. '지키지도 못할 땅 쓸데없이 차지한 죄'로 말이죠.

그게 용서가 된다고 하면 세종대왕이 심판대에 끌려나와야 합니다.

대마도도 버리고 쓸데없이 사군육진을 개척한답시고, 나라의 경계를 축소시킨 장본인으로 말입니다.

 

 역사에 나타나는 이순신이라는 사람의 재현되는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있어야 될 역사의 한 순간을 우린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다는 갑갑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마 이 순간에도 역사의 흐름 안에서 북향 3배하면서 울고 있을 지 모를 감추인 영웅들이 있을 거거든요.

 

 소 시민은 시간이 되어서 점심을 먹으로 가야 할 모양이에요.

그래도 역사는 흐르니까요.

 

(2004년 9월 13일. 동문카페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