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그냥 놓아두면 알아서 잘 하는 경우가 사실은 많습니다.
이미 사고가 유연하지 않은 성인의 뇌로 변한 상태에서는 남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입장이나 행동의 패턴을 바꾸기란 그래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직장 생활가운데 왕왕 의견의 대립이 일어나는 큰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 현장엔 요즘 제법 티나게 문명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다 아는 얘기지만 현장 점검을 위한 순시 과정 중엔 소장의 지시와 호통이 항상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게 현장의 소음에 섞여서 잘 안들리기도 하고, 또 한 20여명이 몰려 다니다 보면 거리 때문에 잘 못듣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 보통 내는 해답을 그렇지요. "메가폰 하나씩 사주라!"
근데 상상을 해 보세요. 한 20여명이 이른 아침에 현장을 돌면서 너 나없이 모두 영화 감독이 '레츠고, 컷' 외치듯이 떠들어 대는 모습을 말입니다.
명색이 현장 지원부장이라고 나왔으니, 예산 절감도 해야하고, 그야말로 현장 지원도 해야하는데...,
이거 현장 돌자고 메가폰을 20개나 사야하나 싶었습니다..
결국 헛 돈 쓴 결과가 되었는데, 지금도 어딘가에 있겠지요. 하여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새로운 소장이 부임을 했고, 현장 패트롤은 계속 되었습니다. 당연 새 소장은 메가폰을 쓰질 않더구만요.
그 때 이미 본사에 부탁을 해 놓은 물건이 이른바 '트랜시버'라는 것인데, 말하는 사람의 소리만 듣는 이어폰 같은 것 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인데도 아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데요.
그걸 한 세트 장만했습니다. 그 후 예전 소장이 패트롤에 합류해서 한마디 하데요. "이거 내가 소장일때는 안 사드만은 내가 그만두니까 샀네."
얼른 받았어요. "그땐 메가폰을 사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뭐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는 얘깁니다. 맡겨두면 서로 편하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건데...
설이 길었네요.
이 트랜시버를 끼고 다니면 스피커를 찬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려요. 하니 조심해야죠.
이제 막 기계를 설치하고 있는 현장엘 들어갔습니다.
대형기계가 설치되면 기계 옆엔 작업자들이 드나들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어 주고, 고정 사다리가 악세사리로 따라 붙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긴 기계만 설치되어 있고, 수직 사다리가 아주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트랜시버를 통해 내 귀를 뚫고 들어왔습니다.
"이 씨 이 뭐꼬? 야들이 원숭이가? 우째 일하라고? 여기 플랫폼 설치 안할끼가?"
다음 날 다시 들른 현장에 플랫폼과 사다리가 제대로 설치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하룻만의 진화를 보게 된 거지요. 어제까지 원숭이었던 작업자들이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건 좋기는 한데, 언제 트랜시버의 역 작용도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고운 말도, 심한 말도 바로 귀를 파고 들어와서 뇌에 박혀버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