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떨어지다? (추억 24)
'생각이 많다' 는 것은 '결단력이 없다' 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한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까 더 그렇다. 얘긴 즉 내 삶의 중심을 주관적으로 살 궁리를 못하고 의타적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타에 감사할 줄도 모르면서 내 핑계만 찾으면서 살았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위의 등식을 억지로 짜 맞춰야 할까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국 고등학교 배치고사 기준으로 보니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가능성이 아주 아주 낮았다.
진학 담당 선생님으로 부터 추천받은 학교는 마뜩치 않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학교를 지망했는데...
보기 좋게 낙방했다. 딴에는 시험을 괜찮게 봤다고 생각을 했는데, 결과가 그렇질 못했다.
합격자 발표를 보면서 느꼈던 심정 - 낙방이 후련했다.
이젠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먹고 살 궁리를 적극적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잡아 본 제목이 '무사히 떨어지다'
사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려면 천상 고모 집을 떠나서 달리 살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 일이 녹녹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 누나의 마음은 고등학교 진학으로 굳혀놓고 있는 듯 했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으니 다시 2차 시험에 응했고, 합격은 했지만 목표 삼았던 장학생으로 선발되진 못했다.
그 때 제대로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그 때 망설임은 끝났어야 했다.
그 때 공부와 병행한 살 방도를 적극적으로 강구했어야 했었다.
그 때 오직 공부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처절하게 느껴서 이른바 일류대학에 장학금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시도를
했어야 했었다.
그러나 이 많은 결정 중 어느 것 하나도 시행할 마음을 먹지 않았다.
빨리 누나가 내 학업 진행을 포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할까?
거기에 더해 선생님으로서는 자질이 의심되는 고교 1학년 때 담임의 무신경과 무시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날 자극했다.
'당신이 있는 한 당신에게 칭찬받기 위한 공부는 하지 않겠다' 는 유치한 생각...
결국 3년전 겪었던 낙방의 경험을 다시 한번 겪게된다.
그러나 이번엔 2차 시도를 하진 않았다. '이젠 진짜 공부는 접겠다' 는 생각이어서 였다.
그 후로도 난 한 방에 뭘 해 본적이 없다.
아마 2차 인생이었던 것 같다. 어쨋든 두 번의 입시는 무사히 떨어졌다.
그러면서 위안했다.
'붙었던들 즐거워 할 일도 아니었다 - 어차피 중도에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될거다' 라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