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는 찬송 소리(추억 23)
사촌 누나는 서울로 학교를 다녔던 관계로 고모는 매일 새벽 밥을 지어야 했다.
고모는 그 때 친정 조카를 거느려야 했던 입장이었던 터라 고모부 눈치를 늘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환경이 아닐 수 없었겠다.
최근 어느 목사님 설교 중 한국 엄마들의 믿음을 얘기하는데, 웃자니 눈물이 나는 그런 말씀이었다.
"엄마들이 공부를 많이 했다 못했다?" 이런 식의 점층법 질문으로 이끌어 내는 엄마들의 속성은 그랬다.
우선 공부를 많이 못했으니 체계적으로 뭘 따지고 믿을 여건이 안 되었고, 성경 묵상 등 말씀 중심으로 믿음의 밑바탕을 다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뭘 할래도 아는 게 없고, 할 방법도 없으니까 그저 매달려서 기도만 했다고 한다. 그게 우리세대를 키운 믿음의 엄마들이었다.
고모도 그런 부류일 수 밖에는...
암만 머리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있은 들 그것을 사회생활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나의 고등학교 진학을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하던 고모였지만, 계속 공부시키겠다는 누나의 고집을 꺽지를 못했다.
입시를 앞두고는 날 깨워 새벽 예배에 나가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다.
나는 아는데, 고모는 모르셨던 모양이다. 내 실력을...
시골 작은 중학교에서야 장학금도 타고, 1등도 하고 그러지만, 누나가 우편으로 보내주던 전국 중학생 평가시험 성적에 의하면 감히 일류를 바라 볼 수 없는
저~ 밑 클라스에 속하는 수준이었다. 각설하고~
새벽예배 후 새벽밥을 지어야 했던 고모는 그 새벽 당신이 지배하는 공간을 찬송으로 채웠다.
새벽 예배를 끌려가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에도 난 그 찬송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깨었고, 가끔은 오류광산 낮은 산에 올라 안양 벌판을 보면서
아침을 맞기도 했다. 거기는 웅변 연습을 하기에도 아주 좋은 위치였다.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낮은 산.
아마 난 솥뚜껑을 여닫는 소리와 장작 불이 타는 소리 중에 섞여 나는 고모의 찬송소리로 인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한다.
특별하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게 된 말씀의 계기가 없고,
뜨거운 회개와 눈물도 없었고, 그렇다고 뒤로 자빠지는 엄청난 마음의 감동도 없었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방언의 은사도 없는 밋밋한 신앙이지만,
뿌리를 지탱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이 곧 내 생활이어야 한다는 신앙관이 있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찬양하면서 오늘을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렇다 고모의 찬송소리와 늘 조카들을 향해 눈물로 기도하셨던 그 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오늘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