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용두사미는 안됩니다
성 경 : 마태복음 20 ; 1 ~ 16
설 교 : 울산 우정교회 예동열 목사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치욕스러운 일,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일 중에 하나가 먼저 된 자로써 나중 되는 일.
다시 말하면 신앙의 용두사미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그랬는데 이 말씀의 핵심은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앞장인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에 먼저 된 자인 베드로가 질문하는 것과 오늘 본문이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 베드로가 묻기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데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질문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답으로 주신 비유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유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 먼저 한 사람들이 나중 되는 그런 결과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1. 주인에 대한 은혜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3절)
오늘 본문에 나오는 품꾼들의 처음 상태는 3절에 의하면 '놀고 서 있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이 불러주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굶을 수 밖에 없는 가족들을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9시에 12시에 오후 3시에 오후 5시에 불러주었다면 당연히 품꾼들이 주인에게 가져야 할 마음은
감사한 마음, '내가 주인에게 엄청난 은혜를 입었구나' 라는 은혜의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품꾼들에게
이 은혜의식이 사라지고 자기들은 일을 더 하였으니 당연히 더 받을 줄 아는 공로의식이 들어가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이 품꾼들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눔 - 귀하는 최근에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했던 적이 있습니까?
2. 주인에 대한 빚진 자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10절)
빚진 자 의식의 반대는 공로의식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먼저 온 자들이 주인을 원망한 이유는 더 받을 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더 대접받아야 된다는 생각, 이것이 우리 마음 가운데 가득찰 때 우리는 그 때부터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 18절에서 다윗은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항상 하나님 앞에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나눔 - 귀하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면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또 무엇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3. 서로간의 동역자 의식이 사라질 때 용두사미의 인생이 됩니다.(11절)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먼저 와서 일한 사람들이 오후 5시에 와서 일한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을 보고
주인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비교의식이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동역자 의식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할 때 그 마음에 기쁨은 점점 사라지게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눔 - 귀하는 언제,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됩니까? 그것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설교는 울산 우정교회 예동열 목사님의 2월 28일 설교 요약입니다.
설교 전문은 우정교회 홈페이지 www.woojeong.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