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방/나루의 방

얼음 지치는 새벽(추억 13)

날우 2014. 9. 17. 15:06

기차 바퀴가 구르는 단조음을 밤새도록 들으면서도 그 소리가 지겹다거나 하질 않았다.

달리 이 기차가 도착 하는 곳에서 부터 새롭게 보장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가족이라는 단위 속에 외계인처럼 외곽에 있는 존재였을지라도 같이 머물 울타리가 있던 곳이 외려 나을 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러 잠을 깨고 들고 하다가 찬 기운에 볼이 시립다고 느껴서 깨고 바라 본 바깥 풍경이 새로웠다.

안양쯤 되었으리라고 생각되었는데, 이른 아침인데 벌써 몇몇 아이들이 얼음 판에 나와 놀고 있었다. 아마 밤새 썰매를 안고 잠들었을지도...

어쩌면 어제 그 아이의 아버지가 굵은 철사를 구부려 붙여서 새로 썰매를 장만해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뒤로 하고 서울역에 기차가 닿았다.

거긴 그때나 지금이나 참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다행한 것은 그 동네 풍경이 낯선 곳이 아니라는 것.

종로에 살적에 달리 볼일은 없으면서도 지나다니곤 했던 곳이어서 역사 맞은편에 밤이면 재봉질하는 이른바 미싱 선전을 하는 네온사인이 있는 서울역이

익숙했다. 나와서 곧 만나게 되는 남대문도 반가웠고...

인천서 처음 서울로 와서 아마 남대문을 돌아 남산으로 올라갔을것 같다. 그때가 7월 칠석 아버지 생신이라고 가족 나들이를 행했던 것으로 안다.

케이블카도 타고,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도시락을 까먹었다. 칠석이라 그런지 까치가 종종걸음치던 것을 보면서 오작교가 진짜일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서울역은 그렇게 여전했다.

문제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분명 누나가 마중을 나왔어야 하는데, 사방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내 손을 꼭 잡은 여동생은 어려도 오빠가 곁에 있으니 별 두려움이 없는 듯 했다.

배 부른 가방이 그 아이에게도 몹시 무거워보이긴 했지만 거들 입장도 아닌 것이 내 가방은 책가방이기 보단 살림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날이 완전히 밝기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차타기보다 지루한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동생인들 내게 뭘 알고 싶겠으며, 난들 동생에게 해 줄 얘기가 달리 없었다.

이젠 완전히 시간이 낮으로 가는 길목인데, 아직 누나는 보이질 않고...

난 오빠로서 결심을 해야만 했다.

오류동을 지나 당시 부천군 소래면에 고모가 살고 계셨다.

아버지를 따라 멀미하면서 몇번 버스길로 따라 다녔던 기억이 있었고, 오류동에서 내리기만 하면 걸어서 4키로를 가야 하는 길이지만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생 손을 잡고 오류동행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탄 마음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그렇게 첫눈뜨고 반갑게 봤던 고향 닮은 얼음지치기 풍경은 불안한 버스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