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세상
물고기의 옆구리 - 유흥준
날우
2010. 3. 22. 01:45
물고기의 옆구리
- 유홍준
옆구리가 전부다
물고기는
비늘 뒤덮힌 옆구리로 살고 비늘 뒤덮힌 옆구리로 죽는다
봐, 저 횟집 물고기들 죽어서도 제 옆구리를 먹인다
맞아, 아내 몰래 가끔 만나던 그 여자랑
생선구이 집에 가서 노릇노릇 옆구리 익힌 거 뜯어먹으며 생각했지
연애란 네 옆구리 파 먹는 생각
산다는 건 지금 누가 네 옆구리 쿡쿡 찌르는 거라는 생각
어두운 밤길 가다가
예고도 없이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향해 쑥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는 그것도 옆구리로 받아야지
그래 그것도 괜찮겠어 번쩍번쩍
빛나는 칼에 맞고 쓰러져
물고기처럼 둥글고 슬픈 눈으로 너를 쳐다보는 것도
119급차에 누워 내 삶의 옆구리로 피가 펑펑 빠져나가는 걸 느껴보는
것도
월간『현대시학』2010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