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현장에서 끄적인 현대정신

잘 못 알면 잘 못 쓰인다.

날우 2014. 4. 3. 11:17

 

잘 못 알면 잘 못 쓰인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거의 일반 상식 수준으로 널리 알려진 경제원칙이다.

농담 삼아 보이지 않는 손검은 장갑 낀 손이라던 친구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에서야 대체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구축(驅逐)을 구축(構築)”으로 이해한 경우는 어떨까?

뜻이 정 반대의 결과가 되니까. 모르긴 해도 시험에 나올 때 마다 오답을 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일제의 억압 사례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아 조종세업을 식민지시 하고…” 를 학자나 정치가가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역할을 다할 때 그 일을 통해 조선 독립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해 했다면 해도 너무 한 일이 아닌가?

 

제대로 가르쳤으니 제대로 알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또 아니까 그대로 행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 더욱 천만의 말씀이다.

 

현대중공업의 초창기 시절 창업자는 이 공장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 분이 뜨게 되면 주변 정리 정돈이 최우선이다. 현장 곳곳에는 후행 공정에서 채 찾아 쓰지 못한 가공품들이 많이 방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창업자가 이것을 보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일. 현장의 전 장비를 동원하고 인력을 동원해서 이 자재들을 치웠다. 세상에서 가장 큰 쓰레기통이 바다라고 했던가? 아까운 재공 자재들은 고스란히 바다로 들어갔다. 후일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무용담. “현대정신은 불가능이 없어. 불과 1시간 만에 공장 바닥에 널렸던 재공 자재를 깨끗이 치워버렸지.”

 

당시 그 일을 지시했던 분이 혹 연말 포상을 받고, 임원으로 승진도 하고, 오늘 날 기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정신 또는 경영철학이라는 것은 창업자의 정신세계 또는 기업관에서 유래한다. 그 창업자와 시대를 공유한 초기 구성원들간에는 상당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기업관이나 창업자의 정신세계에 대한 공유의 정도가 높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규모가 확대되고, 사업분야가 다양해지고 직무의 기능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러한 정신적인 유대나 공감은 희석될 수 밖에 없다.

 

창업자와 한 상에 앉아서, 창업자의 부인이 손수 지어 낸 밥을 먹던 시절의 교감이 재현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더 위험한 것은 잘 못 이해되고 행해졌던 군 시절 무용담 같은 이야기들이 현대정신인양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돌연변이의 형질도 유전이 된다고 한다. 잘 못 알면 잘 못 쓰인다. 현대정신의 재 해석이 필요한 이유이다. 

 

2008.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