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소망
희망(希望)과 소망(所望)
2002. 1. 15
아직 인생을 제대로 논 할 만큼의 그릇이 아님을 느끼고 있는 것은 선인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차원이다. 세월의 흐름 정도가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도 유행을 타는 것인지 몰라도 벌써 50을 바라보는 마지막 고개를 등 떠밀려 올라왔지만, 여전한 치기(稚氣)를 벗지 못한 자아를 당연히 여기는 부족의 덩어리다.
하긴 불혹(不惑)의 40이 되던 해, 그 한해가 온통 회한(悔恨) 이었던 시절에 비해, 이젠 그도 자기합리화의 위안에 담아 넣은 초라한 초로의 길을 준비하는 시대의 보통 사람이 되었다고 자위를 해야 할지...
슬픈 일이지만 살면서 잊어 가는 사람도 있고, 다행스럽게 그 안에서 새로운 만남의 기회도 있는 것이 또 살이다. 잊어간다는 것이 슬픈 이유는 잊음 그 자체가 아니고 어쩌면 그 이면적인 배경의 사유를 안고 살기 때문인지 모른다.
새로운 만남이 예전의 그것과 같지 않은 건, 순수의 자아가 계산적인 자아에 묻혀 도시 그 본디의 모습을 나타내려 하지 않는 까닭이다.
여전히 가슴 설렘으로 옛 만남과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는 글줄을 대한 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화두에 대한 자문에 대한 답변.
그 여자는 소망을 말했다. 그것은 돌아갈 곳이라고...
그래서 그것은 젊음의 희망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고.
희망의 덩어리는 아무래도 큰 것 같다. 그리고 덜 구체적인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가 가능한 미도래(未到來)의 기다림이다.
소망은 그 보다는 작은 것 같다. 어쩌면 절망스러움 중에 찾아낸 보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希望)이 본디 어떤 뜻으로 이해되든, 아주 감정을 배제한 사전적 설명은 이렇다.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 이 단어는 또 기망(冀望), 소망(所望), 희원(希願)과 닮은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희망과 소망은 닮은 말임에도 굳이 그 차이를 나는 기대하기에, 나름의 변(辯)을 확보하기 위해서 소망을 찾아보았다.
‘바람, 바라는 바, 소원, 희망, 의망(意望)’
역시 희망과 닮은 말임을 사전은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느껴지는 부족.
다시 뒤적여 찾아낸 활용의 예를 보니, 어느 정도 구분 지어 설명할 정도의 단서가 잡힌다.
희망이 어울리는 문장 - 아직도 ~은 있다. ‘아직도’ 의 여운과 젊음, 그리고 그 추상성과 공간성. 소망이 어울리는 문장의 예는 그랬다. 여운보다는 절박함이, 젊음보다는 빛바램이, 그리고 추상성과 공간성보다는 회귀성과 평면성이 보인다.
‘남북통일을 ~하다. 꿈에서도 잊지 못할 간절한 ~을 이루다.’
분명 희망은 아직 없었던 것의 커다란 그림에 대한 동경이고 바람이다. 반면 소망은 이미 경험 중에 있었던 좋은 것에 대한 회귀의 기대이다.
그래서 희망보다 소망은 조금은 가슴 싸한 단어인지도 모른다.
돌아가 다시 있고픈 곳의 장소적 의미로 인해서 더욱.
希와 所의 영문비교는 그 의미를 더 분명히 하고 있다. hope와 place라는 전혀 다른 비교를 통해.
희망의 덩어리는 크다. 그래서 덜 구체적이다.
반면 소망은 경험의 조각이고, 회귀의 바람이자, 아주 작을지도 모를 한정적 공간이다.
두 마음정도가 겨우 합쳐 머무를 공간, 두 몸 정도가 겨우 비집고 들어설 수 있는 공간.
희망과 소망을 이렇게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잘 모르겠다.
‘비교해 볼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라는 것은 이성적일지는 몰라도 인간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아직 모르겠다. 늦게라도 돌아갈 곳이 있음 그 자체가 소망의 가치로 넉넉한 것인지 아닌지...
그렇기는 하지만 있어서 없기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다 소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