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를 보면서
국가부도 위기를 보면서
1997. 12. 15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전날 보다 추위는 덜했지만 제법 겨울다운 밤이었습니다.
근 열시가 가까운 시간, 우연히 동승하게 된 어떤 아저씨는 택시를 탄 후에도 밖에서 피워문 담배를 여전히 물고 있었습니다. 다른 동승자를 의식했음인지, 창문을 열려고 애쓰면서 미안한 듯 한 마디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술이 많이 취해서...”
조금을 가다가 우리보다 먼저 타고 있던 아주머니가 내리고 나서 이 아저씨는 한 마디 더 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 오늘 송년회를 간단히 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예전 같으면 얘깃거리도 아닙니다만 어려운 시기에 술 취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해결한 듯 이쪽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해왔습니다.
“사실 우리 같은 서민이 조촐하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어디 우리가 만든 일입니까? 죄다 정치하는 놈들이 이렇게 만든 것 아닙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 마음 한 가운데도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선뜻 동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차기에 대권을 잡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자신의 무결(無缺)을 입증할 의도로 윤동주님의 서시를 인용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비평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그들의 소리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서로에게 입증 받고자 할 것이 아니고 국민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해 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요. 이렇듯 제자신도 남의 말을 쉽게 하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국가부도사태로 일컬어지고 있는 지금의 실정에 대해 국민 된 나 자신은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하고 자문해 볼 때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있어도 많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책임의 크기로 보면야 얼마든지 면제받을 수 있는 책임의 종류겠습니다만 말입니다.
외화가 바닥이 났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기죽게 하면 안 된다고 외제 메이커의 가방과 티셔츠를 사주고 있던 가운데 우리의 외화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술 한 잔 하고 나면 호기롭게 양담배를 시키고 있던 그 시간에도 양담배를 수입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달러가 나가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목적으로 향기 좋은 외제 술을 사던 그 시간에도 백화점 카운터를 통해 지불한 내 돈은 외화로 바뀌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시절 국어 책에 소개된 동요가 생각납니다.
입김으로 호오 호
유리창을 흐려 놓고
썼다가는 지우고
또 써보는 글자들
봄, 꽃, 나비
봄아 봄아 오너라
어서 오너라
봄이 오면 나는 나는
새로 4학년
내 마음엔 벌써
봄이 와 있다
당시만 해도 봄은 그닥 기다릴 만한 계절이 못되었었습니다.
이른바 춘궁기(春窮期)라 해서 먹을 만한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봄은 와야 했습니다. 배고픔의 그 기간이 싫어서 봄을 거부해 버리면 다시 일년간의 긴긴 기간을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봄이 와야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습니다. 가을을 기다리며 밭도 갈고, 씨도 뿌리고, 김도 매야지요. 그 결과가 다시 풍족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지라도 아마 그래서 또 봄을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봄은 희망의 봄입니다.
종자 손도 좀 보고, 밭의 거름 상태도 살펴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이 괴로움만은 아닙니다.
“작년에 가뭄이 심했으니 올해도 여전히 논밭이 말라붙을 것이 아닌가. 열심히 한들 부질없는 일이다.”고 자연의 기후를 탓할 사람도 있겠지요. 마지못해 하는 그 사람도 또 다른 봄은 맞을 겁니다.
아까 그 아저씨가 내리려고 하면서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차비가 얼마요?”
“천 백 원입니다.”
“천 백 원이라고? 이 차 번호 외웠다가 다시 타야겠네.”
아마 평소에는 같은 거리를 좀 더 비싸게 타고 다녔던 모양입니다. 은혜를 베푸는 차원이 아니라 정당한 몫만 주장해도 작은 감사를 느끼는 사회입니다.
케네디의 연설 중 일부가 생각납니다. “오늘 미국의 국민들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요구하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십시오.”
잘 못 된 것을 용서하지는 말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막연한 탓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또한 제 생각입니다.
없었으면 좋겠지만 기왕에 닥친 고통이라면 좋은 날을 우리 손으로 다시 만들어 보자는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때가 아니겠는가 하는 겁니다. 누구 못지않게 저는 제 가족을 사랑하고 제 회사를 사랑하고, 제 나라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가끔 짜증도 내고 신경질도 부립니다만, 그래도 내칠 수 없는 내 가족, 내 회사, 내 나라입니다.
여전히 좋은 봄은 제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겨울은 견딜 만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