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의 미학
소주 한잔의 미학(?)
1994. 7. 20
아주 더운 날 소주 한잔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
비교적 조용한 술집에서 인생을 마시는 것도 썩 괜찮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서민 취향의 닭발과 함께 목을 타고 넘는 쓴 소주의 맛은 시간이 더디게만 가던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는 듯해서 좋다.
다양한 안주감은 또 어떤가?
비록 논리로 무장된 정리된 단어들이 아니더라도, 옆 포장마차에서 타고 넘어오는 생선굽는 냄새와 함께 토해내는 불만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 아니겠나?
자정을 넘겨 할증료를 내고 탄 택시의 수염 더부룩한 기사 아저씨의 투박한 한마디가 술 깰 사이도 없이 뇌리에 박혔다.
“제 놈들이 뭘 알아요? 죄다 죽여야 돼요.”
그럴거다. 아직은 그것이 보편적인 한국인의 정서일게다.
한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심성이라고 한다지만, 김일성의 죽음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문단 파견, 애도 운운하는 소리가 학생들의 입에서, 거리에 넘치고... 심지어 국회에서조차 거론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분노는 사실 택시 기사의 몫은 아니다.
그들을 업수이 여겨서가 아니고,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기득세력들의 철부지함을 나무라는 투박함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덜 여문 식자들이 아직도 많은 내 조국의 현 주소에서 느끼는 수치스러움이 있다는거다.
허허롭게 웃을 수 있는 소주 한잔의 여유가 그나마 체면을 유지시켜 주는 건.
아직 “소주 한잔 가볍게 했습니다.” 라는 양해가 통용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착각 중에 서민들은 울분을 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걸 미학이라고 표현하는 그것 자체를 사치함이라고 몰아붙일지도 모를 다른 사람들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