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경영혁신 이야기

정말 아름답다는 것

날우 2014. 3. 26. 11:38

정말 아름답다는 것

1996. 10. 28

현중 오피스에 ‘내가 생각하는 멋있는 남자(여자)의 모습’이란 제목의 글이 올랐다.

- 열심히 운동이나 일에 열중하며 땀을 흘리는 남자

- 농사일을 마치고 고단하게 잠드신 시어머니의 팔 다리를 주무르는 며느리

-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느라 땀에 젖은 정열적인 선생님

-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길에 꽃씨를 뿌리는 할머니의 모습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열거하고 있지만 연령층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생략하기로 한다.

최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결과에 의하면 LG가 향후 발전가능성이 가장 큰 기업이라고 응답을 했다고 한다.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사랑해요 LG'라는 이미지 광고가 주효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광고라면 삼성도 빼 놓을 수 없는 기업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이 기업에서는 얼마 전부터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다. 그 중 한 광고가 눈길을 끈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아프리카」에서였습니다.’ 사진은 소말리아의 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주름잡힌 오드리 헵번 할머니를 크게 싣고 있다. 바로 그 사진 밑에 한창 그녀가 주가를 올리던 시절의 사진을 싣고 있다. 큰 눈과 오뚝한 콧날, 완벽한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예쁜 용모의 사진이다.

잠시 생각을 돌려서 ‘멋’이라는 것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멋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수필가들에 의해서 글의 소재로 다루어져 왔다.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을 듯한 곳에서도 종종 멋을 찾아내곤 한다. 그 면에 비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다루어지는 주제가 다분히 회화적이고 형상화 된데서 찾고자 하는 것이 일반의 인식인 듯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어느 부분 한 뿌리에서 연유하여 가닥을 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멋’이라는 말의 뜻은 ‘태도나 차림새 등에서 풍기는 세련된 기품’, ‘격에 어울리게 운치있는 맛’, ‘흥취를 자아내는 재미스러운 맛’으로 풀이되고 있다. 형용사로서 ‘멋있다’라는 단어는 ‘보기에 좋다’, ‘훌륭하다’, ‘풍류스럽다’라고 풀이하였다.

한편 ‘아름답다’라는 말은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곱다’, ‘훌륭하고 갸륵하다’, ‘착하고 인정스럽다’ 라고 풀이하고 있다.

결국 두 가지는 다 느낌적으로 오는 것일 뿐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일진대는, 보기에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는 공통분모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멋스러움이 곧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길에서 꽃씨를 뿌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찾는 멋스러움과, 아프리카의 한 어린아이를 받쳐 안은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닮아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 두 할머니의 공통점은 누구로부터의 인정받음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바를 그저 해 오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멋스럽게도, 아름답게도 보이는 것은 그 진정함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도에 지나침이 없이 어울려 떨어지는 행동에 있었다. 멋과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래서 인위적인 것도 아닐 터이요, 반대급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치장된 멋도 많고, 가공된 아름다움도 많은 세상이다. 심지어는 美의 기준을 두고 심사한다는 자리에서조차 ‘본래의 얼굴’이니 ‘뜯어고쳤느니’ 시비가 일 정도가 되었다.

막가는 인생이라고 해서 ‘막가파’라고 이름을 지었노라는 폭력집단의 변인즉 ‘보기 싫은 족속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에 있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따져 보고자 한다면 기실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이 많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임을 전혀 부인할 일만도 아니다.

나라살림이 어쩌구저쩌구 해도 해외에 나가 초호화 낭비생활을 하고도 ‘내 돈 내가 쓰는데 어때’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까. 물론 ‘막가파’가 저지른 반인륜적 행동에 동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눈에도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무리가 있었다는 현실 그 자체는 딱이 부인 할 것만도 아닌 듯 하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의 피력일 뿐이다.

이제 진실 앞에서 우리의 행동을 조명해 보아야 할 때이다.

‘나의 말과 행동은 격에 맞는 멋스러움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질 소신 있는 나의 작은 실천들이 혹여 지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주변에 떠올리고 있는 문제의 현장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목청 높여 청결의 당위성을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앞에 떨어져있는 담배꽁초를 무심 히 지나치지 않는 작은 실천들이 더욱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얼마나 속 깊이 느끼고 있는걸까?“

밖으로 요란스레 홍보는 안 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마음으로 통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적어도 국가경제 발전의 일등공신은 여전히 ‘현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세인들에게도 당연시되지 않겠는가?

진정한 아름다움의 실체는 외형적인 호화로움이 아니고 내면적인 진실의 작은 실천이라는 것을 안다면, 또 그 아름다움의 진정한 가치와 멋스러움을 세인들이 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