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종류
웃음의 종류
1996. 8.13
감정의 표현과 관련해서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 아닌가 한다. 어떤 사람은 말이 웃는 것을 봤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개가 웃는 것도 봤다고는 하는데, 비슷한 세월을 살아 온 경험자들 중에 몇몇 사람들에 의해 어쩌다 관찰된 특이한 상황의 기이한 현상을 일반적인 것으로 취급함에는 무리가 있다 하겠다.
하긴 붕어가 웃는다고 해도 그 뿐이고, 고사 상에 돼지가 빙긋이 웃는다고 표현을 하기도 하니까 굳이 아니라고 단정지어 논쟁의 거리로 삼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이란 동물의 얼굴표정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몇몇 특징적인 기관의 움직임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헌데 사진에 찍혀서 나오는 얼굴 모습의 찡그러짐을 보면 큰 웃음과 큰 울음의 그것이 많이 닮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끼리는(인간들) 그 표정에서 배어 나오는 감정의 형태를 기쁨과 슬픔으로 구별 할 수 있는 경험적 식견이 있어서 식별이 가능하지만, 다른 동물들이나 감정 표현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 외계인들의 눈에 비친 그 표정들(웃음과 울음)은 명쾌하게 식별이 안될는지도 모른다.
김용호라는 시인은 역설(逆說)이라는 그의 시를 통해 ‘극(極)과 극은 그렇게도 멀었고, 극과 극은 또 그렇게 가까웠다’라고 첫 연을 시작하고 있다. 그야말로 역설적인데,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 발생될 수 있는 갈등의 요소가 그렇게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가깝다는 것과 멀다는 것의 주체가 되는 것은 육체가 속한 거리를 의미함이 아니요, 그 안에 내재한 마음의 당김 정도가 정(情)의 깊이가 되려니 참으로 가깝지만 먼 것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슬픈 내용의 노래가 점점 숨가쁜 율동 속에 표현되는 이해 못할 세태 가운데 복고풍 노래 ‘도로 남’이란 노래가 이채로운데 그 내용 또한 김용호의 역설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지우면 님이 되고, 또 다시 점을 찍으면 도로 남이 된다’는 가사의 노래. 동일한 환경 여건 가운데서도 주인 됨과 남 됨이 공존하는 이유, 그것도 노랫말로 쓰여져 읊조려짐직한 소재가 아닌지 모르겠다.
중앙집회가 끝난 운동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휴지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더욱 그렇다. 웃음은 분명 인간이 가지는 표현인데, 어떤 마음 상태에서의 표현인가에 따라 종류가 다단하다. 꼭 한가지 웃음만이 아니다. 통상 웃음이 가지는 사전의 의미가 ‘웃는 소리’, ‘웃는 일’로 설명이 되어있고, 이의 으뜸꼴인 ‘웃다’는 기쁨이 매개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즉 기쁨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웃는 것이란 말인데, 인생사는 여전히 복잡한 것이어서 이 웃음에 대해 잠시는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우선은 기쁨을 나타내는 것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큰 것 순으로 정리하다 보면 몇가지 표현이 눈에 띈다.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가 큰 웃음의 종류에서 대표적인 것인데 이를 뛰어 넘는 의미의 웃음에 포복절도(抱腹絶倒)가 있으니 참을 수가 없어서 배를 안고 뒹굴며 웃는 것을 의미하고 그 비슷한 말로 봉복절도(捧腹絶倒)가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아주 잔잔한 웃음을 미소라고 하며, 미소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잔잔함’이라는 의미가 같을 뿐 의미가 전혀 다른 미소(媚笑)와 미소(微笑)가 있다. 앞의 웃음은 영어로 ‘a coquettish smile’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coquettish가 의미하는 바가 ‘남자를 후리는, 남자에게 아양을 부리는, 교태를 부리는, 요염한’이라고 하니 저고리 고름 살짝 물고 배시시 웃는 눈웃음이 아니겠나 싶다. 크기에 있어서는 비슷한 정도가 되겠지만 부처님의 은유를 깨달은 제자의 웃음으로 설명되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있어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위의 웃음과 비교할 때 다소 격은 떨어지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미 다 알아’ 하는 교만함의 은근한 표현이나, ‘쓸데없는 소리 하고있어’ 하는 의미의 웃음으로 소위 코웃음이라는 것이 있고, 되어지는 결과가 전혀 뜻밖의 양상으로 전개될 때 터져 나오는 헛웃음(失笑)이 있으며, 마지못해 웃음을 흘리면서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소(苦笑)가 있다. 이렇듯 많은 웃음의 종류들은 다만 구분의 논리로 구분을 지어봤을 뿐 그 쓰임새에 있어서는 경우를 한정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전혀 크게 웃지 않을 상황에서도 분위기에 따라 박장대소하면서 눈물까지 찔끔거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작 큰 웃음이 따라야하는 경우에도 코로 웃고 말거나 어이없다는 失笑로 진정한 가치를 애써 외면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앙일보 사태를 놓고 각 신문사의 앞 다투기 식 ‘삼성 깍아내리기’ 보도는 기사의 공정성과 사실성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보다는 ‘또 다른 신문 구독 부수 확장전략이 아닐까’ 하는 의아심 마저 든다.
이쯤에서 힘찬 21의 고민과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서 오는 웃음의 종류를 보자. 결론적으로 배경의 근원이 파안대소나 포복절도, 박장대소 할 기쁨의 발원은 아니었으니 제외하기로 하자. 그러나 적어도 함께 가자 하는 변화의 길이 失笑나 苦笑, 또는 비웃음의 차원에서 각기 편할 대로 해석할 성질의 것도 아닌 듯 싶다. 진정한 고민의 의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고개 끄덕거림이 절실히 요청되는 ‘위기상황의 공유’가 그 저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오늘의 환경을 놓고 그 전대로 하루 또 하루를 살아나가다 보면 우리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역관성(逆慣性) 속에서 또 다른 ‘획기적인 변화’를 찾는데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다.
금메달의 꿈이 예선탈락으로 끝나버린 사격선수 김미정은 의외의 결과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실망을 주지 않겠다고 새로운 결의를 다졌다. 그 시간 코칭 스태프는 어이없는 결과에 失笑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기회가 있어 김미정 선수의 약속이 실현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역사는 그리 오랫동안 실패한 선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준비를 위한 피나는 노력도 때로는 참담한 실패로 끝날 수가 있고,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도 국민도 그가 흘린 땀의 양을 가늠하여 때로는 용서도 하고,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하는 것이다. 힘찬 21에 실린 기대는 어떤 빛깔의 메달을 기대하면서 성원을 보내고 있는 걸까?
또 그 마음속에 품고 있는 웃음의 종류는 어떤 빛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