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귀농 프로젝트 (미래에서 부친 편지) - 이문재
도시귀농 프로젝트
--미래에서 부친 편지
이문재
나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거기서 땅을 놓친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나는 도시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한때 누구 못지않게 땅에 뿌리박은 삶을 꿈꾸었습니다. 이곳의 도로와 빌딩은 악이고, 그곳의 산과 들이 선이라고 믿었습니다. 도시에서 오직 미래를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의 나와 너는 옳지 않고, 내일의 우리와 그들이 바람직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왔습니다. 하마터면 그때 도시를 떠날 뻔 했습니다.
그 사이, 앞과 뒤가 바뀌었습니다. 좋았던 것이 나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미래에서 돌아왔습니다. 과거에서 서둘러 달려왔습니다. 도시가 더 화급했습니다. 도시 안에서 도시와 더불어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미래였습니다. 도시 간척--.
우리는 도시를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냈습니다. 간선도로 위에 고가도로를 올려 그 상판을 농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빌딩과 아파트, 학교 옥상 위에도 흙을 올렸습니다. 그 사이 많이들 싸웠습니다. 대통령이 몇 번 물러났습니다. 초국적 기업의 사주를 받은 용병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도심을 뒤엎기도 했습니다.
그해 봄, 대통령궁 안에서 모내기하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시청 앞에서 토마토를 땄습니다. 겨울에는 고가도로 농장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했습니다. 도시가 푸르러졌고, 사람들이 자기가 키운 먹을거리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우리의 도시귀농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자동차를 버린 중국 대학생, 댐을 폭파한 인도 정치인, 핵발전소를 폐쇄한 러시아 과학자, 국가의 복지정책을 거부한 스칸디나비아 교사도 찾아왔습니다.
나는 얼마 전 도시를 떠나왔습니다. 도시 곳곳에 마을이 생겨났고, 그 사이 시골은 또 시골다워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만 접어야겠습니다. 이웃 중강진할머니 댁에서 손주 돌잔치를 벌인다는 전갈입니다. 소식 또 전하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서 부칩니다.
<현대문학> 2010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