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이름으로
자꾸 과거를 들먹이고,
추억에 살면 그건 늙은 징조라고 하던데, 요즘 제가 좀 과거 회귀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싫지만 늙어간다는 현실을 그래서 인정해야겠지요.
하긴 귀도 시원찮고, 돋보기 없으면 잔 글씨도 안 보이고, 멀리 보고, 듣고도 못 들은체해야 하는 어른의 반열에 오른 거라고 위안 삼으렵니다.
옛날 그러니까 국민학교 시절 참 신기하게도 한글을 떼고 만화에 심취했던 무렵, 제 머리 속엔 살아있는 영웅들이 많았습니다.
유세종, 박기당 내노라는 유명한 만화가들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공상만화가 등장하는데, 주로 철인들이 활약을 합니다.
철인, 대철인, 아톰 이런 부류들이죠. 이상석, 이종진 이런 분들이 히트를 쳤습니다.
당시 아톰은 요즘 일본서 건너와 한국에 정착한 예쁜 아톰이 아니고, 대머리 아톰이었습니다.
나중엔 이 캐릭터가 오늘 날의 아톰으로 슬쩍 변경됩니다.
좀더 머리가 굵어질 즈음 정말 만화가 다운 만화가들이 등장합니다.
이상무, 이현세 이런 분들이죠. 독고탁, 설까치, 엄지… 마치 살아 함께 행동하는 인물 같은 느낌으로 친숙해진 주인공들과 함께…
줄거리에 흥분하고 이들 주인공에 반하는 상대역에 분노하면서 정의로운 울분의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습니다.
특히 엄지를 향한 마동탁의 대시(dash)를 보면서 마치 자신이 설까치 인양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까치는 아직 엄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도, 다가서지도 못할 여건일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들 만화 속에는 참 정의가 있었습니다.
중상과 모략, 그리고 헛된 야망으로 인한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된 정복야욕…, 이런 것들은 우리의 주인공들에 의해 깡그리 퇴치되곤 했습니다.
이보다 시대를 조금 더 해서 영화를 통해 등장하는 슈퍼영웅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전 이들 중엔 슈퍼맨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강하기는 해도 나머지 캐릭터들은 슈퍼맨에 비해서는 강하기의 정도가 틀려서 일겁니다. 아마 일대일로 붙여 놓으면 슈퍼맨을 당할 수가 없을 겁니다. 나머지 주인공들이…
그런가 하면 여자 영웅들이 있지요. 원더우먼, 제이미소머즈…
이들 영웅들의 활약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평소 생활과 악에 대항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
즉 감추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부연하면 ‘내가 있으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하면서 산다는 것.’
이름을 빌려 사는 것은 아니니까 차명은 아니겠습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니까 익명도 아니겠습니다.
슬그머니 의문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익명성과 정의로움의 함수관계가 말입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될수록 정의로움의 정도가 높게 발현 될라나요?
아마 그럴 거라는 생각입니다.
복구되는 정부 부처 기구 중 해수부의 역할에 반대하는 부산 시민, 관계자들을 대표해서 어제 1인 시위에 돌입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얼굴을 다 밝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와 주장을 하는 거지요. 집단도 아니고 혼자서…
그런데 말입니다. 이 분과는 전혀 다르게 가면 쓰고 찧고 까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누리꾼? 네티즌? 이런 단어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얼굴 – 없습니다. 이름 – 없습니다.
“사람이 아니무니다.”
이들의 말은 거칩니다. 내 이름과 모습을 감추고 자기 공간에 패대기쳐지는 대상은 실명, 별명을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공개합니다.
자신의 정의로움을 갖은 욕설로 도배하고, 치장 해 놓고는, 이 말들로 엉망진창 몸을 못 가누는 상대에게 마지막 조언을 합니다.
“죽어버려라.”
가면 속에 깊이 감추고 있는 절대 보장 익명성 정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쓸쓸한 일을 겪은 끝에 차마 있는 얘긴 다 못하고, 그저 넋두리해봅니다. 3일간 비 끝에 살짝 갠 하늘을 보면서요.
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