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라는 말이 아주 어울릴때가 있어요
살면서... 라는 말이 아주 어울릴때가 있어요.
그 ‘때’ 라는 것이 어떤 계기가 있을 때여야 하는 것이야 물론이고,
그 계기란 것이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여간 큰 감정의 기복을 유발하는 사건이나 사고가 있어야 성립이 될 겁니다.
이런 일들이 흔치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 접하면서 살아요. 다만 느낌의 크기가 달라서 외부로 나타나는 정도가 다를 수가 있겠고,
혹은 주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내 안의 크기가 밖의 느낌으로 되돌아 오기엔 약한 경우가 있겠지요.
어떤 사람이 저더러 그러데요. “명단에 빠졌던데요?” 그래요? 하고 웃었지요.
어떤 사람은 또 그러네요. 아마 청와대에서 놓친 모양이라고. 요새 좀 바빠서 그렇겠지요.
시기를 많이 놓친 그래서 더 이상 기회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런 농담들이 외려 정감 가는 위로가 됩니다.
하긴 위로라고 하기도 참 뭐하지만 말입니다.
근데 아직 그리 안타까워 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 맛이 나기도 해요. 감정이 참 극과 극이지요?
집 사람이 이번 승진 발표 얘기를 듣다가 지나가듯 한 마디 하데요.
‘글쎄 당신 말대로 작년에 회살 그만 두는 것이 맞았었을라나 봐.’ 그렇게 부부는 닮아 가나요?
아직 아까워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있으면 그건 버릴 때가 되지 않은 겁니다.
아직 맘에서 털어내고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내 때가 지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생각과 그 보다 훨씬 많은 갈등… 웃고 살지요 뭐.”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한 아직 내 그릇은 온전히 채워지길 기다리는 큰 그릇입니다.
예가 정말 아니지만 그야말로 턱도 없는 내 주장을 펴 볼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광복은 우리 국민들이 찾은 자랑스러운 역사의 장면이었나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내 덕으로… 라고 말 할 사람은 없잖아요?
그러나 고민하던 청춘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또 내일을 맞아야 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회록을 쓰는 일이다.”
잘 아는 시인 윤동주님의 고백입니다. 그 이는 25살 젊은 나이에 조국 광복을 불과 여섯 달 남겨 둔 어느 날 일본의 한 감옥에서 숨을 거둡니다.
인간 모르모트로 생체 실험을 당해 죽게 되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습니다만…
그 이의 참회록을 옮깁니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세요.
울고 싶을 때는 우세요. 다만 남자라는 이유로 눈물은 삼켜야 하겠지요.
좋을 때 크게 웃는 것처럼 그건 당연스러운겁니다.
그러나 아직 다 놓지 않아야 할 것은 ‘아직 내 때가 간 것은 아니다.’ 라는 거지요.
때론 정말 때론 평가와 기대와 현실이 작은 차이로 어긋날 때가 있거든요.
저녁한끼 초대 고마워요.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 바닥으로 발 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는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 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