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세상

고개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간다.

날우 2013. 10. 26. 13:16

어젠 지난 5월 받았던 ‘은퇴설계 지원과정’ 의 심화과정으로 실시되는 ‘상담과정’ 안내를 받고 인재교육원으로 향했습니다.

 

 

교육장을 이리저리 찾고 있는데, 대강당이 있는 홀로비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여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가 보았지요.

 

 

인재교육원 직원들이 안내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수막엔 커다랗게 ‘저자와의 대화’라고 써 있었습니다.

 

 

아마 꽤 알려지신 분이 오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직원 중 한 사람에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라고 물어 온 길을 되돌아 분임토의실 중 가장 구석진 방으로 갔습니다.

 

 

지난달 교육 기간 중 면이 있던 ‘좋은 직장’인가 대표자 분이 반갑게 악수를 청해왔는데, 정확히 절 기억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요.

 

상담과정은 월요일과 화요일 양일간 진행되었는데, 화요일 대상자는 19명인데 12명이 왔다는 안내를 받으면서 아는 사람 4명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면면을 훑었습니다. 모두 30년 넘는 현대중공업 직장 경력자들임에도 정말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 나머지였습니다.

 

 

그러니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참 중요한 일이네요.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인사를 당길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으니까요.

 

상담 진행자는 3분이 나오셨는데, 처음부터 버벅입니다.

 

 

뭘 준비해 온 것이 없는 모양으로 자유롭게 상담의 needs를 논하면서 공통 주제를 찾아보고 개인상담이 필요하면 그리 연결을 해서 심화해 나가자고 합니다.

 

심한 짜증과 실망, 그리고 세련되지 못한 진행에 과정 전반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을 믿고 무슨 상담을 어찌 진행시켜 나간단 말인가?

 

 

노련한 우리 식구들 그 와중에 누군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과정에 대한 기대, 본인이 처한 상황, 기분, 그리고 분위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2년을 더 할 수 있어서 안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그 부분은 감사한 부분이다.

 

뒤를 이어 뭔가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듯 몇 사람이 이런 저런 말로 분위기를 이어 나갔는데, 여전히 ‘심화과정의 상담’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저 회사에 대한 건의 사항 내지는 섭섭함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형태의 토론 분위기로 흘렀습니다.

 

요즘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잘 살고 있는 중인데,

속이 끓었습니다. 이건 정말 소모적인 과정 진행이었거든요. 적어도 어제도 과정 진행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 양상이 같을 것이고,

뭔가 풀어갈 실마리를 진행부에서 찾았어야 했거든요.

 

 

해서 그들의 준비 없음과 무성의를 몹시 질타했습니다. 신청을 받은 것이 벌써 한 달이 가까우면 그 사람들에게 사전에 어떤 방법으로든 연락을 해서

 

 

상담의 주제를 그룹핑할 필요가 있었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묶어서 상담과정을 진행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참가가 중에 잘 아는 한 사람이 그러네요. “김부장은 출신이 인사이다 보니까 아직 인사를 대변하고 있다.” 고 말이지요.

 

 

그럴 수도 물론 있긴 해요. 참 출신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바로 후회했습니다. 5분만 더 침묵하고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뭐가 달라질까?

 

앞으론 그렇습니다.

고개를 더 숙이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고개 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 간다.’는 시를 접한 여름날 아침의 감회입니다.

 

<옮김>

 

 

동강할미꽃의 말


태양을 향해
피어야만 꽃이 아님을
할미꽃 피는 마을에 와서
깨닫는다

숨어 피는 꽃이
더 어여쁘다는 것을
바위틈에 핀 동강할미꽃을 보고
겨우 알아차린다

한평생
바람으로 떠돌며
걸음마다 시의 꽃을 피우던 사내
고요히 잠든 김삿갓 계곡에 와서
하늘 우러러 피는 꽃만 사랑한 죄
뒤늦게 뉘우치는데

은산철벽의
동강할미꽃 하나
고개 숙인 꽃의 향기가 더 멀리 간단다
나를 달래듯 가만가만 속삭인다


.사진 - 백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