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23일 밤은 작은 배에 몸을 맡기고 하루 밤새 고기를 잡아야 다음 날을 사는 가난한 어부의 심경으로
하늘을 봐야 했습니다.
24일은 성탄 전야이기도 했지만 우리 현장으로서는 이른바 'The first contrete pouring'이라고 하는
아주 의미 있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 요란하게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밤 11시가 가까웠으니까 늦은 밤이었지요.
일을 맡고 있다보면 괜한 근심이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옷도 채 꿰어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엄청난 비가 퍼 붇고 있었습니다. 땅은 이내 물이 고여 흥건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숙소 주변은 그나마 평지인데도 그런데 6미터나 파낸 구덩이야 일러 무엇할까요?
급하게 담장에 둘러 친 트리 장식 전등 연결을 끊으라고 하고는, 아직 그칠 기세가 없는 밤 하늘을 원망스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이라니요. 그 때 몇 사람이 더 튀어 나왔습니다. 건축부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그 친구도 잠을 못 이루었던 모양으로, 며칠간 속을 썩이며 흔들리던 어금니를 제 손으로 흔들어 빼고 있던 중이라고 했습니다. 괜시레 슬퍼졌습니다. 그 친구가 흔들어 뺐다는 어금니도 여기여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일이 아닌가 싶은게 그도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누구보다 귀한 사람들인 것을...
예서 할 수 있는 일은 귀찮으면 스스로 해결을 하는 것 외에 별 다른 도리가 없는거니까요.
빗줄기가 곧 사그러들었습니다.
그때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닐을 씌웠는지 모르겠네."
얼른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불쌍하게 제이를 흔들어 뺐다는 그 친구였습니다.
"그게 뭔 소린가? 검사한다면서,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으면 의당했어야 할 일 아닌가?"
의외로 그 친구는 태연했습니다.
"씌웠을 겁니다."
결국 본인이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했을 거라는 얘기지요.
그때라도 뛰어 가 보는 것이 책임있는 행동이 아니었겠나 싶은데, 사실은 아까 같이 비가 계속 온다면 비닐이 소용이 없지요.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다려 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새벽 녘 다시 잔 비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쪽 하늘은 벌겋게 해 뜸의 조직이 보이는데, 그 빛을 받아 하얀 선으로 그리며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난 생육 동지들에게 '여우가 시집가나보다'고 글을 썼지요.
시집을 가려거든 어서 가고 치워라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했습니다.
10시까지의 기다림은 정말 지루했습니다. 이윽고 현장 정문으로 고국에서도 자주 보던 믹스차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만큼이나 당당해 보이는 위용을 자랑하면서 한대, 두대,세대... 줄을 지어 들어왔습니다. 이젠 비도 멎었구요. 첫 삽도 무리하게 뜨기 시작한 이 현장에 첫 메꿈의 공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날 저녁 우린 현지에서 어렵사리 구한 막걸리 잔을 높이 들고 "위하여"를 정말 크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내일 그 보다 세 배는 더 큰 구덩이에 기초 콘크리트를 부을 예정입니다. 그 위에 우리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들이 하나 씩 완성되어 나갈 겁니다.
위의 사진은 콘크리트를 부은 후 정리를 하는 사진이고요,
아래 사진은 건배 제창을 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건배는 그날 본사에서 출장 나온 박영준 부장이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곁들인 첫 글을 올려 봅니다. 나중엔 사진 화보도 올려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