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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 제곱의 법칙 (5) 결정적인 증거

날우 2011. 7. 25. 21:14

E=mc2 : 제곱의 법칙

 

(5) 결정적인 증거

 

에너지의 측정을 mv2로 하게 되면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었다. 정서로 가고 있는 트럭의 mv2 100 단위의 에너지라 치고, 충돌의 선로를 따라 정서로 가고 있는 두 번째의 트럭의 mv2 100 단위의 에너지라 하자. 뉴턴이 보기에는 서로 부딪혀서 상쇄되었지만,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그 것들은 더해졌다. 예를 들면 내가 100 단위의 에너지로 돌진해 나가고, 당신도 100 단위의 에너지로 나를 향해 돌진해 온다고 하자. 우리가 서로 부딪힐 때, 우리가 가진 200 단위의 에너지는 금속조각들을 퉁겨나가게 하고, 마차바퀴를 뜨겁데 달구며, 계속 어지러운 소음을 울리면서 그 존재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관점에서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스스로 움직인다. 세상에는 신이 다시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에너지를 몰아내는 어떤 구멍이나 수문 같은 것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한다. 태초에는 신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샤틀레는 이 같은 해석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이러한 견해를 주장한 이후 왜 수십 년 동안 그의 견해가 시들해졌는지도 알아챘다. 그의 주장은 너무 모호했다. 자신의 개인적 성향에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이 증거는 불충분했던 것이다. 볼테르가 그의 소설 캉디드*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처럼, (라이프니츠)의 견해는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상할 정도로 수동적인 관점이었다.

샤틀레는 대화할 때 말이 엄청나게 빠르기로 유명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베르사유의 얼간이들과 시레이에서 볼테르와의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 이론에 관해서라면 휠씬 여유롭고 조리있게 말했다. 샤틀레는 라이프니츠의 첫 번째 논쟁과 그에 대한 기본적 비판들을 검토했다. 그리고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 그녀의 연구를 돕는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구체적인 증거들을 다방면으로 찾기 시작했다. 볼테르의 눈에 그녀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샤틀레에게 그 시기는 인생의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으며, 자신이 시레이에 설치한 연구 기구가 마침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와 동료들은 빌렘 스흐라베잔테의 최근 실험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였다. 네덜란드 출신 과학자 스흐라베잔데**는 부드러운 진흙 판에 무게 추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만약 mv1이 맞는다면, 처음에 비해 2배 빠르게 떨어지는 무게 추는 2배 깊이 박힐 것이다. 3배 빠르게 떨어진다면 3배 깊이 박힐 것이다. 하지만 스흐라베잔데가 발견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놋쇠 공을 전보다 2배 빨리 내려치면, 진흙 속에 4배 깊이 박혔다. 3배 빠르게 내려치면 진흙 속에 9배 깊이 박혔다. 그것은 E=mv2의 원리로 생각하면 예상할 수 있는 수치였다. 2의 제곱은 4이다. 3의 제곱은 9이다. 그 공식은 생소한 방식이긴 했지만, 자연에 대한 근본원리인 듯 보였다.

스흐라베잔데는 확실한 결과를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종합적으로 설명해 내는 이론적인 능력은 부족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최고의 이론가였지만 자세한 실험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사실 라이프니츠가 mv2를 내 놓은 것은 상당 부분 추측에 의한 것이었다. 샤틀레의 연구는 이 틈새를 메웠다. 그녀는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발전시켰고, 네덜란드 과학자의 실험 결과를 그 안에 적용시켰다. 그래서 마침내 mv2을 효과적인 에너지의 정의로 보는 강력한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녀의 발표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글은 늘 분명하고 명쾌했다. 이렇게 해서 시레이는 몇 안 되는 진정한 독립 연구소로 인정받게 되었다. 대부분의 영어권 과학자들은 자동적으로 뉴턴의 편을 들었고, 독일어권 과학자들은 거의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프랑스는 항상 중도적 입장에서 결정표를 던지곤 했다. 샤틀레의 목소리는 마침내 이 논쟁을 마감하는 해결의 열쇠가 되었다. (보더니스 E=mc2에서 발췌)

 

위와 같이 속도의 제곱으로 물체의 운동 에너지를 정의하는 방식은 앞서의 뉴턴 역학을 발전시켜 라그랑주 역학을 탄생케 합니다. , 영국의 뉴턴은 힘의 역학을 개창하였고 프랑스의 라그랑주는 샤틀레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에너지의 역학을 완성한 셈이죠. 아래 왼쪽은 잘 아는 뉴턴 역학 제2법칙, 오른쪽은 라그랑주 운동 방정식. 의미하는 내용은 서로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려우니 눈구경만 하고 가십시다.

                               

 

학창 시절 계몽주의->볼테르->캉디드로 연결해서 암기하던 캉디드의 내용을 이제야 봅니다. 같은 풍자소설이라도 돈키호테처럼 유명했으면 줄거리라도 주워 들었을 텐데 한국 인문학 교육, 좀더 정확하고 솔직하게는 인문고등학교 교육 문제 많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인 스흐라베잔데 (Willem s Gravesande)는 이름 찾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한때 드디어 위키피디아에 나오지 않는 인물을 찾았다고 기뻐하였지만) 끝내 찾았기에 이미지로 잘라서 첨부합니다. 위키피디아, 정말 대단합니다. 그림이 뜨지 않으신 분 들께는 죄송.  

그나저나 과학에 신은 개입할 이유가 없는 것인가 ? 아니면 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가 ? 대책 없는 물음, 감당할 수 없는 의문 ? 꼬리를 내리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 SMLee

 

*캉디드 [Candide]

1759년 발간. 부제목 낙천주의(樂天主義)’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라이프니츠 등의 낙천적 세계관을 조소하고 사회적 부정 ·불합리를 고발하는 철학적 콩트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캉디드는 숙부인 남작의 저택에서 팡그로스 박사의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 즉, 현재의 상태는 가장 옳다는 주장을 믿는 순진한(프랑스어로 ‘캉디드’) 청년이다. 사촌 큐네공드를 연모했다가 숙부에게 쫓겨난 그는 가는 곳마다 전쟁 ·병고 ·조난 ·지진 ·종교재판 ·고문 ·폭행 등을 겪는다. 방랑 중 팡그로스 박사를 만나 숙부의 집이 병화(兵火)에 소실되었음을 알게 된다. 포르투갈에서 큐네공드를 만나 두 사람은 남아메리카로 향했으나, 여기서도 재난을 만나 헤어지게 된다. 캉디드는 도원경(桃源境:엘도라도)에 당도하나, 큐네공드를 잊을 수 없어 그녀를 찾아 대륙으로 돌아간다. 고난을 겪어 추악하고 성미가 까다로워진 큐네공드와 여전히 낙천주의를 고집하는 팡그로스와 재회하여 자그마한 농장을 꾸려나간다. 그의 비참한 체험과 온갖 사회적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무위(無爲)나 염세사상에 빠지지 않고 인간사회의 개선에 의욕을 잃지 않는 정신을 “그러나 내 밭을 일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명한 맺음말로써 잘 나타내었다. 웃음을 통해서 지성에 호소하는, 명쾌하고 신랄하여 템포가 빠른 문체가 매력인 볼테르풍의 전형적인 풍자소설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