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 제곱의 법칙 (3) 최초의 민간 과학연구소
E=mc2 : 제곱의 법칙
(3) 최초의 민간 과학연구소
샤틀레의 남편은 시레이*에 별장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콜럼부스가 미국에 가기 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것이었는데, 성문이 닫힌 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샤틀레는 그 별장을 프랑스의 순수 과학 연구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별장은 손볼 곳이 많았다. 얼마 후 볼테르는 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샤틀레는 계단은 굴뚝으로, 굴뚝은 계단으로 바꾸고 있네. 내가 인부들에게 도서관을 만들라고 지시한 곳에 그녀는 살롱을 만들라고 말하지. … 내가 느릅나무를 심으려고 했던 곳에는 라임 나무를 심고 있네. 그리고 내가 약초와 채소를 심은 곳에는…. 오직 화단만이 그녀를 행복하게 할 걸세.”
공사를 마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거기에는 파리에 있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비견할 만한 도서관과 런던에서 건너온 최신 실험 장비가 있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객실용 방들이 또 한쪽으로는 세미나실들이 나란히 있었다. 곧 유럽의 최고 과학자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샤틀레는 전용 실험실을 가지고 있었고 한쪽 벽에는 와토의 그림도 걸어 놓았다. 볼테르를 위한 전용 복도와 방도 있었고, 그의 침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통로를 통해 샤틀레의 침실과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번은 볼테르가 미리 얘기하지 않고 그 통로를 통해 샤틀레의 방에 들어갔다가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샤틀레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자기는 단지 요즘 그의 건강이 안 좋아 보였고, 휴식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다른 남자와 있었던 거라고 해명하였다).
베르사유에서 온 방문객들은 비아냥거리듯 아름다운 여인이 실험실 안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방문객들은 그녀가 책상에서 일하는 모습과 계산과 변역문으로 가득한 서류더미 주위에 놓여진 많은 양초들, 대강당에 놓여있는 진보된 과학장비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곤 했다. 그녀의 공간에 볼테르도 종종 들어오곤 했다. 그의 방문은 왕궁에 대한 가십을 늘어놓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뉴턴의 라틴 원문을 네덜란드 주석과 비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샤틀레가 위대한 발견을 할 뻔한 기회들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녀는 녹을 관찰한 라부아지에의 실험과 흡사한 실험을 시도했다. 만약 그녀가 직접 만든 저울이 조금만 정확했더라면, 그녀는 라부아지에가 태어나기도 전에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시레이 팀은 새로운 스타일의 과학자들과도 우호적인 서신 왕래를 지속하였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어떤 증명이나 도식, 계산 등을 제공하였다. 쾨니그나 베르누이 같은 과학자들은 한번에 몇 주씩, 어떤 때는 몇 달씩 묵으며 연구했다. 볼테르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통해 뉴턴 연구의 기초가 튼튼해 지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와 샤틀레가 서로 야유 섞인 논쟁을 할 때면, 세계적인 사상가인 그가 자기의 젊은 애인이 이길 수 있도록 배려했을 거라는 추측은 전혀 잘못된 것이다. 샤틀레는 물리학계의 진정한 과학자였고, 물리학계가 풀어야 할 핵심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사람이었다.
그건 ‘에너지란 무엇인가?’ 였다. (보더니스 ‘E=mc2’에서 발췌)
여복이 많은 볼테르를 부러워해야 할지 말지…? 그러나 더 이상 에로는 없습니다. 본격 고전역학의 치열한 토론 이제 시작됩니다.
그전에 잠시나마 인구 300여명의 조용한 마을 시레이의 그림 같은 볼테르/샤틀레 커플 별장도 감상하시고…. SMLee